45년 전, 얼굴 한 번 보고 결혼한 부부가 있었다. 그 시절의 형편이 대개 그렇듯 부부의 살림은 어려웠다. 남편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느라 바빴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잠든 아이들의 발을 보고서야 아이들의 성장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의 도시락을 쌌고, 함께 사는 시부모님의 세 끼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남편은 늘 세상에 화가 나 있었다. 하루 종일 고생하는데도 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지, 언제까지 고단한 새벽과 밤을 반복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궁금했다가 나중에는 원망스러웠다.
아내는 늘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다. 새벽같이 나가야 하는 사람이 왜 밤만 되면 술을 마시는지, 아이들에게 왜 다정한 소리 한 번 하지 않는지, 무엇보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을 보면 화가 났다.
매일 똑같은 하루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아이들은 장성했고, 집에는 부부만 남았다. 지독히도 나아지지 않던 형편은 어느새 부부가 그들 소유의 집을 가지게 될 만큼 괜찮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은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는데 왜 자신이 이혼을 당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아내의 요구를 거부했고, 그 길로 아내는 집을 나갔다.
그리고 한 달 후, 아내가 변호사를 선임해 남편에게 이혼과 동시에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소장에서 아내는 남편과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 내내 불행했다고, 이제라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의 고생을 몰라주는 아내와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았으나 아내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도 싫어 변호사를 선임했다.
부부 모두 이혼에 동의한데다 한 쪽의 귀책사유가 크지 않고, 아내의 재산분할 요구도 과도하다 보기 어려워 변호사들은 부부에게 적정한 선에서 합의하는 방법을 조언했다. 부부 역시 이에 동의해 이혼소송은 조정으로 원만히 종결되었다.
대부분 부부의 이별 과정은 이 부부처럼 원만하지 않다. 특히 일방이 이별을 원하지 않는 경우이거나, 이별의 대가로 무리한 요구를 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미 분쟁이 발생한 이후라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 보라는 이상적인 조언만으로는 결코 분쟁을 해결할 수 없다.
이 부부의 이별이 그랬듯 서로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냉정해 보일지라도 인정할 것과 다툴 것, 포기할 것과 요구할 것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원만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돕는 최선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별 과정이 원만할수록 이별의 후유증이 적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원만하고 아름다운 이별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냉정함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그 냉정함으로 인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 더 많아지길 바라 본다.
박지연 법무법인PK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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