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눈빛에도 온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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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눈빛에도 온도가 있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03.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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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경 천상고등학교 교사

올해도 담임 교사로 배정되었다. 학교마다 다를 수 있지만, 대개 반 편성이 완료되면 학생 명단은 비공개로 한 채, 학년 선생님들이 반을 추첨한다. 제비를 뽑는 그 순간 한 해, 내가 만날 아이들과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학생들과의 만남은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어떤 모습으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지는 늘 고민스럽다. 신규 시절에는 친구같은 교사가 되고 싶었고, 이후에는 차별하지 않는 공정한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교직을 거듭할수록 공정한 태도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학급 구성원이 자라온 삶의 배경과 개인의 특성이 각기 다르기에 학교생활을 누구나 거뜬하게 수행할 수는 없었다.

인권위원회의 조사관들이 등산을 갔다가 나눴다는 일화가 있다. 해질녘의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노을은 왜 저렇게 붉을까?’라는 동료의 질문에 ‘저녁노을도 다 사정이 있었겠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우스갯소리지만 이처럼 저녁노을에도 있다는 사정이 청소년에게 없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학생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지도의 기준을 달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는 공정한 태도 뒤에는 반드시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진정한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화법’ 전공 교수님께서 ‘눈빛에도 온도가 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발표 상황에서 화자는 청자의 시선과 반응에 따라 말하기 불안도가 달라지듯이 교사의 따뜻한 눈빛에 학생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

3월의 셋째 주이다. 오늘도 우리 반에는 생글생글 웃으며 기분 좋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도 있지만, 아침부터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음에도 지각을 면치 못한 친구도 있다. 친구들이 점심 급식을 먹으러 갈 때 교실에 앉아 문제집을 푸는 친구도 있고, 공부와는 담을 쌓고 수업 시간조차 꾸벅꾸벅 조는 친구도 있다. 각자의 고유한 이름 뒤에 담긴 사정을 나는 모른다. 그러므로 항상 유념할 것이다. 눈빛의 온도와 친절한 태도를!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이혜경 천상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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