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이런 시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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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이런 시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04.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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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경 울산 삼신초 교사

얼마 전 아이들과 한창 교과 공부를 하다 선생님이 색다른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며 열심히 공부하자고 아이들을 북돋웠다. 무엇을 할 거냐는 쏟아지는 질문에 간식 만들기라고 답했다. 틈틈이 의견을 모아 보았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피구, 유튜브 보기, 요리하기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다면 우리 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편한 요리 수업이 없을까 생각하다 떠올린 것이 와플 만들기다. 마침 실과교과에 간식 만들기 활동이 있어 학습과도 연계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카페에서는 많이 봤지만 직접 와플을 만들어 본 적은 없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준비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내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알려줘야 하니 내가 먼저 해봐야 한다.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렸다 예열된 와플기에 넣어 2분 정도 구우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와플기에서 막 꺼낸 빵 위에 시럽을 뿌리고 한입 먹어보았다. 달달한 시럽이 미각을 자극하고 버터 향이 고소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괜히 기대감만 심어 준 걸까? 갖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이들은 색다른 활동에 반색하고 평소보다 내가 하는 말에 더 귀 기울였다. 모둠원과 차례대로 반죽을 와플기에 넣어 굽고, 잠시 기다렸다 자신의 접시에 옮겼다. 그리고 메이플 시럽을 올렸다. 요리랄 것도 없는 간단한 활동이었는데 아이들은 그냥 음식을 나눠 먹었을 때보다 훨씬 흥미 있어 했고, 굽기의 정도나 시럽의 양을 조절하며 자신의 취향을 반영했다. 아이들의 식성은 제각각이었다. 단것을 좋아한다며 시럽을 넉넉히 뿌리는 친구도 있었고, 갈색으로 바싹 굽힌 빵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까지 뿌듯해졌다. 맛있냐고 묻는 내게 아이들은 엄지척을 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이럴 때 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선생님의 격려나 칭찬, 꾸지람 같은 상호작용이나 선생님, 친구들과 나누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반면에 어떤 것을 배우고 공부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지식을 배우는 것은 반복되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추억으로 남진 않았다. 선생님과 폐식용유를 이용해 재활용 비누를 만들었던 기억, 비누를 만들 때 팔이 아프도록 저었던 기억, 친구들과 게시판을 꾸미기 위해 머리를 맞댔던 기억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반 아이들도 어른이 되었을 때 학생 때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길 바란다. 한두 번의 활동으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이 좋은 일들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내가 특색 있는 활동을 준비하는 이유다.

유은경 울산 삼신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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