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리만 할 때 송사리를 잡으러 강에 나갔다가 수면 가까이 올라온 황쏘가리를 보고 숨이 턱 막혔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는 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강의 내밀한 비밀을 알게 된 듯, 나는 어렵게 잡은 송사리를 놓아주었다.
큰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화천 가는 길, 헤드라이트 불 앞에 장수하늘소가 나타났다가 큰 날개를 퍼덕이며 어둠 속으로 유유히 멀어져갔다. 메뚜기나 물방개에서 느끼지 못한 위엄, 모든 생물에게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다는 걸 남겨주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물속에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육지로 올라와 포유류로 적응했던 한 생물은 왜 다시 바다로 돌아가 고독한 고래가 되었을까. 나는 이끼였을까, 바다거북이었을까. 귀가 가려운 어느 날 청각을 잃으면 아가미가 돋을 것이다, 심해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 피조물 향한 경이로움

지금도 제비나비를 보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하얗게 핀 망초꽃에서 우아하게 날갯짓하던, 비로드처럼 검은 나비. 그동안 부전나비나 배추흰나비 같은 것만 보던 눈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제비나비는 놀라움 그 자체였고, 이후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쫓아다니게 되었다.
시인도 송사리를 잡다 황쏘가리가 물에 얼비치는 걸 보고 숨이 막혔다고 한다. 어른 팔뚝만 한 황쏘가리는 강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걸까. 크기 때문에 이름에 ‘장수’가 붙은 장수하늘소도 날개까지 펼쳤다면 위엄과 경이로움을 느낄만하다. 더 크게 보이려고 동물들은 털을 세우고 깃을 부풀리며 인간도 굽을 높이고 어깨를 편다. 큰 것은 우리를 압도하는 힘이 있으므로. 그래서 장대한 것을 보았을 때 손안에 든 송사리는 시시해 보이고 마음속엔 더 크고 넓은 세상을 열망하게 된다.
크기에 대해 생각하다 시인은 지구에서 가장 크다는 고래를 떠올린다. 한때 육지에서 살았던 포유류인 고래는 그 거대한 크기를 받아주는 바다에서의 고독과 자유를 택한 것이 아닐까. 반대로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와 적응한 인간은 저 거대한 심해 생물에,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까지 담아 경이를 느끼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리라.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