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화약고’로 불리는 울산석유화학단지의 안전성을 높이는 ‘통합 파이프랙 사업’이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등 관련 법에 발목이 잡혀 실시설계가 중단되고, 사업비도 반납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노후 배관’이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해 안전한 삶을 염원하는 울산 시민의 꿈이 또 시련대에 올랐다.
통합 파이프랙 사업은 석유화학단지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노후 배관(3.55㎞)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프로젝트로, 지난 2010년 울산시의 석유화학산업발전 로드맵에서 처음 제시됐다.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포함됐고, 우여곡절 끝에 2021년 정부와 기업이 사업비 분담률(25대 75%)에 합의하면서 본격화했다. 총 사업비는 709억원(국비 168억원, 민간 541억원) 규모다.
그러나 그간 상황을 복기해 보면 이미 2018년께 부터 예고된 파행이나 다름 없다. 당시 공업지역 내 도로와 배관의 수평 이격 거리 확보 등 법적 저촉 문제가 드러나 시가 관련 법 개정, 규제개선 등을 모색했지만, 해법을 찾지 못했다. 2023년 말 실시설계에 들어간 울산도시공사는 관련법 저촉이 확인되자 한국산업단지공단과 협의 끝에 지난해 7월 실시설계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비로 투입된 실시설계 용역비 반납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시는 법적 이격 거리 확보 대신 차단벽 등 안전성을 담보할 보호시설 설치를 대안으로 찾고 있다. 관련 용역을 마련해 산업부 승인을 다시 받는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 해결방안에 대한 산업부 승인 여부도 불투명하다. 자칫 사업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태는 사업 추진 전 철저한 사전 검토와 법적 요건에 대한 면밀한 분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석유화학단지 통합 파이프랙 사업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 울산국가산단 지하에는 화학관, 가스관, 송유관 등 총 1774.5㎞에 달하는 노후 배관이 묻혀 있는데, 노후배관은 울산공단 폭발사고의 주범으로 꼽힌다. 통합 파이프랙 사업은 그 중 지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울산석유화학공단의 화약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은 울산 시민의 오랜 염원이다. 안전 확보와 현실적인 제약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울산시와 정부는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석유화학단지의 안전성 확보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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