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실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사회가 불안해지면 공황장애와 우울증 환자가 찾아온다. 부부 갈등 내담자가 많아서 사회통계자료를 보면 이혼율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다.
최근에 깜짝 놀란 일은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안 먹으려 하고 등교를 거부하는 문제로 내원하였는데, 큰 키인 160㎝ 임에도 체중이 35㎏에 불과하였다. 이 깡마른 아이의 목표는 30이 되는 것이니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부모는 야단치고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음식을 입에 쑤셔 넣어도 삼키지 못하고 뱉어 내었단다.
단 둘이 면담을 한 후 부모를 불렀다. “날씬해지려고 고집하는 다이어트 정도가 아닙니다. 아이가 마음이 지옥일 때 할 수 있는 것이 자기 몸을 학대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죠.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때 구명보트를 건네 줘 물에서 나오게 해야지, 물 밖에서 야단을 치면 안됩니다. 그 정도로 지금 아이는 자기 비난과 낮은 자존감, 우울증, 대인기피증, 학교 부적응, 등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러한 소아에까지 확대된 섭식장애가 더 늘고 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 현상에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함축되어 있기에 그렇다. 지나친 다이어트는 섭식장애 즉,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이어진다. 그 내면에는 사회와 학교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 불안증, 우울증, 대인기피증과 자기학대가 깔려 있다.
섭식장애 환자를 면담해 보면 이들의 증상은 심리적 위기감으로서 음식을 거부하며 자기 존재감을 건 마지막 몸부림임을 알 수 있다. 정형화된 섭식장애 유병률은 전 세계 인구의 3%에 이르며 비정형화된 섭식장애까지 포함하면 미국의 경우 인구 9%가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의 2022 보건복지부 통계에서 청소년의 평생유병률이 2.3%로 나왔다. 우리의 숨기려는 정서가 큰 것을 감안하면 실제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섭식장애는 더 이상 특정인의 질병이 아니라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질환이다. 2023년 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조사에서 초등학생 때 다이어트를 시도한 비율이 44%, 청소년 응답자의 경우 평균 12.8세에 첫 다이어트를 시작하였다. 거식증은 기아, 자살, 심정지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치사율이 높은 질환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인한 사망위험률은 일반 인구 대비 6배 높으며, 그 중 1/5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때문에,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이 질환과 현상이 청소년과 소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혼 등 가정의 붕괴가 큰 요인이다.
부모의 갈등으로 가족이라는 안전해야 할 보금자리가 물에 잠기려 할 때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질병과 문제를 일으켜 자신에게 주의를 돌려 가족의 붕괴를 막으려고 한다.
섭식장애는 가정과 사회의 질환이다. 선진국들은 섭식장애를 공공의료에 포함시키고 지원한다. 일본의 경우 2014년 정부가 ‘섭식장애전국지원센터’를 설립하였고, 호주는 2023년부터 ‘국가섭식장애전략 2023∼2033’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섭식장애 치료와 지원 체계는 거의 공백 상태이다. 청소년과 청년이 겪고 있는 섭식장애를 더 이상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환자가 회복에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의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 울산도 이러한 섭식장애에 대한 사회 인구학적 통계조사를 시행하기 바란다. 특히 소아·청소년들의 거식증, 섭취장애는 학교적응과 가정붕괴 등 여러 문제들이 함축되어 있는 질환이기에 중요하다. 교육청 등 주무부서의 주도로 실태 파악 후 공공보건 정책으로 진행하면 되겠다. 30㎏이 목표라는 내담자 여아아이의 말이 귓가에 맴 돈다.
“매일 폰의 SNS에서 안 먹고 구토하고 깡마른 몸을 인증샷 올리는 애들을 보면 먹을 수가 없고, 폭식이라도 하면 자해를 하게 돼요. 음식을 보면 역겹고 마음 편할 때가 없어요.”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