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탈출한 고릴라가 돌아다닌다
어떻게 나갔어
대체 비결이 뭐야
철망을 하루에 한 칸씩
나도 몰래 뜯었지
절망을 뜯어냈다고?
철망을 뜯어냈다고!
오타를 고치려다
눈이 주운 어휘 한 잎
절망을 하루에 한 줌 몰래 뜯어내야지.
조금씩 노력하면 절망도 다스릴 수 있어

폰으로 ‘중고나라’를 치려다 ‘숭고나라’가 되었을 때, 중고의 것, 그러니까 오래되고 낡은 것들 속에서도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무게에서 오는 깊은 숭고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숭고에 대하여’란 제목의 시를 쓴 적이 있다.
철망과 절망도 마찬가지다. 한 끗 차이로 뜻이 달라지는 낱말처럼 사유와 행동도 한 끗 차이로 달라질 수 있다.
시에서 화자는 철망에 갇힌 고릴라의 탈출을 통해 내면의 절망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한다. 우리에서 탈출한 고릴라에게 그 비결을 물었을 때 고릴라는 ‘철망을 하루에 한 칸씩’ 뜯었다고 한다. 그때 화자는 철망이 절망으로 들린다.
‘오타’를 고치려다 ‘주운 어휘’라고 표현했지만, 화자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 데 이른다. 그것은 고릴라가 철망을 탈출했듯이 절망이라는 내면의 감옥도 탈출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하루 한 칸씩 철망을 뜯어낸 것처럼 절망도 단숨에 극복이 가능한 게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노력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큰 변화는 작은 시도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득음의 과정을 생각하면 철창과 절창도 그럴 것이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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