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5일 ‘스승의 날’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우리 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 탄생일을 기념하여 제정하였다.
여기서 ‘스승’은 단지 학교 교사에 국한하지 않고 지식제공은 물론 삶의 나침반이 되는 올바른 길을 열어준 모든 이에 해당한다.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받들 만한 사람이 있다’라는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교원단체에서 8200여명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명 중 6명이 이직이나 사직을 생각한 적 있다고 한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 정년 전에 퇴직한 교원 3만6748명 중에서 지난해에 919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니 오랜 기간 교단에 섰던 필자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하다.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은 이제 용도 폐기된 지 오래고, 무례한 학생이나 일부 학부모의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교권이 눈에 띄게 추락하는 추세임에는 분명하다.
훌륭한 스승 아래서 뛰어난 제자들이 탄생한다.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나, 많은 후학을 양성한 공자를 비롯하여 세상에는 훌륭한 스승들이 많다. 맹·농아였던 헬렌 켈러를 7세부터 48년간이나 보살핀 설리번 선생의 지극정성은 몸이 불편한 제자가 여러 언어를 익히고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장애인의 인권신장을 위해 힘쓰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교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정신문화의 산실인 안동 도산서원은 당대 큰 스승으로 추앙받던 퇴계 이황이 인격도야는 물론 학문연구와 인재 육성에 힘썼던 장소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쪽에서 뽑아낸 푸른색이 쪽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스승에게 배운 제자가 스승보다 더 훌륭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는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서로 성장한다’라는 ‘교학상장(敎學相長)’과 함께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개천에 용이 나는 시대는 아니다. 과거에는 형편이 어려운 시골 학생이 종종 가난을 극복하고 큰 성공을 이루기도 했지만, 현대는 엄청난 교육비를 투자하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는 시대, 어른들에게 고민을 상담하기보다 컴퓨터·게임기나 스마트폰 등과 더 친밀한 시대, 기학습된 대화형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시대이지만 적어도 교육만은 차가운 기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접촉으로서만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괄목(刮目)한 발전을 이룬 원동력은 교육에 있었다.
지나친 교육열, 치맛바람, 사교육비의 과다한 지출 등 부작용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인재를 배출하고 세상을 빛나게 할 과학 융성, 문화 융성의 요체는 올바른 교육 환경과 풍토 조성에 있다. 지난날 기치를 내걸었던 ‘교육입국(敎育立國)’이야말로 가르침을 통해 국가를 튼튼하게 세우는 ‘백년대계’(百年之大計)의 출발점이었다.
서이초 사건 이후 2년만에 제주에서 한 교사가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으로 또다시 추락한 교권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 땅의 스승 대부분은 묵묵히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배우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며 가르치는 것은 내일의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금언을 새삼 소중히 되새기며 황망한 5월을 보낸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