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중학교가 올해 운동회를 교외 구민운동장에서 진행했다가 일부 학부모의 민원에 부딪혔다. 학생들의 높은 호응으로 첫 행사를 무사히 잘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활동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일부 학부모의 의견에 내년 개최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교육적 필요에 따라 기획한 활동을 민원 우려로 접는 일은 이제 학교 현장에서 낯설지 않다.
교육활동에 대한 학부모들의 입김은 비단 체육행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장체험학습은 학부모 동의 절차가 까다로워지며, 인원 부족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유학년제 활동이나 진로체험 프로그램 역시 “수업 외 활동은 불안하다”는 민원에 부딪혀 축소되거나 특정 직업군 중심으로 편성돼, 다양성과 창의성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수학여행은 작은 안전사고에도 민형사상 책임이 교사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교권침해 문제는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울산교사노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역 교사의 52.4%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했다. 그 주된 이유로는 ‘교권 침해 및 과도한 민원’(40.4%)이 가장 많았다. 학생(54.4%)과 학부모(49.9%)로부터 교권 침해를 당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서, 현장 교사의 부담이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며 교권 보호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후 여러 교권보호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결국 2년 만에 제주에서 또 한 명의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됐다.
일선 교사들이 민원 부담으로 교육활동을 포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는 교사 개인의 좌절을 넘어, 학생들이 교실 밖 세상을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할 교육이 의심과 불신 속에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당국은 학교가 과도한 민원에 휘둘리지 않고 교육 본연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교사에게는 자율성과 권한을 되돌려주고, 학교는 교육적 판단에 따라 민원에 눈치 보지 않고 활동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은 교실 밖 세상도 배울 수 있고, 교육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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