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곧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선거기간 동안 거리에 걸린 요란한 현수막에도 ‘새로운’ 대통령을 표방한 문구가 제일 많았다. 선거에 나선 후보 모두 지난 대통령들과는 다른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실 이번뿐만 아니라 선거 때 마다 대부분의 후보는 기존 집권자와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당선된 후에는 결국 허언(虛言)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 등장할 대통령은 과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후보들의 과거 경력과 발언, 그리고 공약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는 하지만, 정말로 새로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우선 자기가 속한 정치적 진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러 대통령들이 취임할 때에는 모든 국민들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특정 정파의 리더에 그치고 말았다. 전정권의 과오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복수를 일삼았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적 권력기관을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켰다. ‘인사는 만사’라고 하면서도 자기 진영의 좁은 인재 풀에서 돌려막기식 인사를 감행했다. 이로 인해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졌으며, 정책의 수준도 저하됐다.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지지하는 열성집단만을 고려하며 통치를 한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국가지도자(national leader)로서, 반대자들을 포용하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국정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시로 국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기존 대통령들은 청와대나 용산에 틀어박혀 한정된 사람들과 제한된 접촉만 일삼았다. 언제나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언론과의 대화나 소통을 차단하고 일방적인 홍보에만 열중했다. 이른바 측근들이라는 소수의 핵심그룹이 밀실에서 정책을 좌지우지했다. 그 결과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정책들이 난무했고, 이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는 막중했다. 국민들과의 만남은 가끔 시장을 방문해 ‘먹방’을 보여 주거나, 아니면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시민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인위적인 것이 전부였다. 새 대통령은 수시로 언론과 만나고, 공개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쇼가 아니라 진정으로 책임지고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극한 대립 그 자체였다. 국회에서는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서로 대립해 왔다. 통상, 외교·안보, 양극화 등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난제(wicked problem)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은 마치 남의 일처럼 방관해 왔다. 국민들의 삶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보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새 대통령은 정쟁 중단을 선언하고,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일정기간 동안은 개인이나 정파적 이해가 걸린 정치적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국민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챙겨야 한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타협과 양보를 이끌고, 이를 통해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해 그동안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극렬하게 대립하는 여야가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가 제시한 ‘원초적 상태’(original position) 개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원초적 상태란 ‘사람들이 미래에 얻을 자신의 지위에 대해 전혀 모르는 가상적 상태’를 의미한다. 만일 사람들이 미래에 자신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서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만일 자신들의 처지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른다면, 즉 앞으로 계속 여당이 될지 아니면 선거에서 참패해 다시 야당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면,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일반적인 이성에 기반한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대통령부터 원초적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새 대통령은 지지세력과 편협한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원초적 상태에서 직무를 시작하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