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경계선에 선 아이들, 교실엔 자리가 없다
상태바
[경상시론]경계선에 선 아이들, 교실엔 자리가 없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6.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미화 동의대 교직학부 교수 동의대메타버스교육연구소장

“성적은 중간 정도인데, 늘 숙제를 못 해오고 수업도 따라가지 못해요.”

“다른 애들과 어울리질 않아요. 늘 혼자 있고, 표정도 없고요.”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과제를 끝내지 못하고,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 그들은 바로 ‘경계선급 지적 기능’(BIF: 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학생들이다.

지능지수 71~84인 BIF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은 아니지만, 일반학급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어려움이 크다. 그러나 현행 교육체계에서는 이들을 위한 지원이 거의 없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외형상 평범해 보여도 수업 이해, 과제 수행, 또래 관계 등에서 반복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특히 언어·추론·실행기능이 느려 학습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배려는 부족하며, 지금의 교실은 이들에게 지나치게 빠르고 경쟁적이다.

현장의 교사들은 BIF 학생을 어떻게 지도할지 늘 고민에 직면한다. 수업을 반복한다고 해도 이들의 이해가 깊어지지 않고, 다른 학생과의 격차만 벌어진다. 개별 지도를 하고 싶어도 25명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운영하는 현실 속에서는 한계가 크다. 결국 BIF 학생은 교실 안에 있지만 손 닿기 어려운 존재가 된다. 이들의 어려움은 학령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아기부터 언어 발달과 표현, 놀이에 제약이 있으며 성인기에는 대인관계와 의사결정, 직업 유지까지 영향을 받는다. 교육의 공백은 자립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약자로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현재 BIF 학생에 대한 교육지원을 살펴보면 ‘기초학력 보장법’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사이에서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학습지원대상 학생으로 분류되어 간헐적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진단 기준이 모호하고 개별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실질적 개입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의 지원은 외부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실과 교사 중심의 실질적인 개입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BIF 학생을 위한 조기선별 및 종합 진단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IQ 수치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서·사회성·적응행동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한 다면적 평가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입학 시점에서부터 선별검사를 시행하고 지역 진단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진단과 지원이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학교 안에서는 일반학급 중심의 기초학습 보강, 소집단 활동, 반복 학습, 역할극, 체험 중심 수업 등이 적절히 조합된 맞춤형 교수 전략이 필요하다. 학교 밖에서는 지역사회, 복지기관, 진로지원센터 등과의 협력이 병행되어야 하며 조기 진로 탐색과 직업 중심 교육도 포함돼야 한다. 이를 교사가 혼자 감당할 수는 없기에 전문지원팀과의 협력과 실질적 자원 제공이 필수라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 제정된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은 BIF 학생의 존재와 교육적 요구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며, 학교장이 학습참여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선별해 맞춤형 지원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지역 통합지원센터와 다기관 협력을 통해 구조화된 지원체계를 구축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이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자원 배분과 실행 지침, 교사와 학부모 대상 교육 등 세부적 준비가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과의 연계’다. 많은 부모가 자녀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 채 혼란 속에서 양육을 이어가고 있다. BIF 학생의 발달 특성과 지원체계에 대한 정보제공, 상담지원, 복지 연계는 가족 전체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져야 하며 전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BIF 학생은 실패한 아이들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교실이 그들에게 너무 빠르게 너무 획일적으로 흘러갈 뿐이다. 우리가 이들을 위한 교육을 고민하는 일은 단지 소수 학생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학생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평균을 기준 삼는 교육에서 벗어나 ‘가능성’을 중심에 둘 때 모두를 위한 학교는 현실이 될 것이다.

이미화 동의대 교직학부 교수 동의대메타버스교육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의 小공원 산책하기](6)도시바람길숲-새이골공원
  • [정안태의 인생수업(4)]이혼숙려캠프, 관계의 민낯 비추는 거울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문성해 ‘한솥밥’
  • 양산 황산공원 해바라기 보러 오세요
  • 울산 부동산 시장 훈풍분다
  • 추억 속 ‘여름날의 할머니집’으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