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출산으로 나라가 망해간다고 하는데, 아이들 웃음소리가 소음이라고요?”
울산 울주군 범서읍 꿈마루어린이공원 물놀이장 조성 사업이 민원에 가로막혀 중단됐다는 기사를 본 어느 독자가 내뱉은 말이다. 놀랍고도 씁쓸했다. 아이들의 웃음이 소음으로 간주되는 시대, 공공시설이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울산뿐만이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공공시설’ 조성이 지역 주민의 ‘불편’과 ‘민원’이라는 문제에 막혀 당초 계획대로 건립되지 않거나 대체 장소를 물색해서 겨우 조성되고 있다. 소음, 교통, 환경, 사생활 침해, 안전 문제 등 공공시설이 들어설 때마다 따라붙는 반발의 사유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과거의 님비는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쓰레기소각장, 장사시설 같은 이른바 혐오시설에 국한됐다면 이제는 물놀이장, 파크골프장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여가·복지시설까지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무작정 주민을 탓할 수는 없다. 공공시설 조성지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교통 체증을 온몸으로 겪으며 환경 변화에 직접 노출된다. 실제 파크골프장에서 울려 퍼지는 공치는 소리를 싫어할 경우 층간소음처럼 특정 소리에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 있다.
편익은 사회 전체가 누리지만, 피해는 자신들의 삶터에 집중된다. 구조는 불공정하고, 감정은 외면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공공시설은 누가 이용하고, 누가 희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공공시설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공공성’과 ‘사적 권리’의 충돌이다.
공공성은 공동체의 필요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러나 공공시설이라는 이름이 ‘우리 동네 불청객’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공감대 형성이다. 최소한의 설명, 최대한의 소통, 생활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대응책 마련이 수반돼야 한다. 행정이 먼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조언은 그래서 뼈아프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아이는 놀 곳이 없고, 노인들은 운동할 곳이 없다’며 정작 본인이 필요할 때는 공공시설을 요구하면서도, 그 위치만큼은 다른 동네이길 바라는 이중적 태도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공공시설은 어딘가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어딘가가 ‘내 집 앞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노인을 공경하는 복지행정’. 지자체가 내세우는 슬로건이 현장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화, 더 정밀한 설계, 더 철저한 절차가 필요하다. 결국 님비현상을 넘어서야 공공성은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된다. 공공시설의 자리는 단지 지도 위가 아니라, 시민의 마음 속에 먼저 마련돼야 한다.
신동섭 사회문화부 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