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 한국의 정·관계에서는 ‘어린이 수영’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수영을 가르치는데, 혼자서 수영을 할 수 있을 때 수영장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게 하면 시일이 오래 걸리고 물에 일단 밀어 넣으면 자연스럽게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논쟁의 배경은 바로 민선자치의 시기문제였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1991년에 지방의회제가 부활됐으나 자치단체장은 여전히 임명제여서 반쪽짜리 지방자치였다. 그래서 단체장도 주민들이 뽑아야 하는데, 당장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주민들의 정치의식 등 여건 상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 맞서게 된 것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1995년 7월에 민선단체장이 취임함으로써 혁식상으로는 온전한 지방자치가 시행되게 됐으며, 이제 30년이 된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30세가 되면 ‘이립’이라 해 학문적·인격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초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민선자치가 시행된 이후 주민 직선 대표들이 지역 특수성에 맞는 정책을 시행해서 지역의 발전은 물론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립’이라고 할만큼 자신있게 표현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제도적 틀 안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여기까지 온 지방자치도 이제는 제대로 ‘서야 할’ 시점이다. 민선자치 30주년을 맞아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먼저, 중앙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지방분권을 추진해왔지만 많은 권한 특히 복지와 환경, 도시계획 등 주민생활과 직결된 업무들이 중앙의 지침이나 예산에 의해 좌우된다. 지역문제를 지방정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과감한 권한이양이 필요한데 실상은 녹록치 않다. 2년 정도 지방분권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중앙업무 중 이양대상 업무를 심사한 적이 있는데, 중앙부처 대부분의 공무원은 국정시책의 성과달성 미흡 우려와 지방공무원의 전문성 부족을 들면서 방어하는 입장을 취했다. 권한이양을 제대로 할려면 과거 ‘규제완화’ 시책처럼 대통령이 권한이양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장관들에게 직접 챙겨야 할 것이며, 아울러 중앙부처 공무원들 인식의 전환과 지방공무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다음은 재정분권을 위해 국세 일부의 지방세 전환이 필요하다. 권한을 이양해도 이를 집행할 예산이 없으면 그 권한을 행사할 수가 없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75%대25%(2024년)로서, 과거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미국(46.5%)·독일(53.7%)·일본(37.7%)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아, 지방은 중앙정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실질적인 자치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지방세의 비중을 너무 높이게 되면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지만 현재의 지방재정으로는 지방정부의 정책 자율성과 실행력을 높일 수가 없기 때문에 국세 중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해 재정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세번째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자질 및 도덕성이 높아져야 한다. 단체장의 경우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 지역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지역도 있으나, 또한 자질이나 특히 도덕성 차원에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사법처분까지 받는 사례도 많다.
지방의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약 30만명(민원경험인 21만명, 공무원 8만5000명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결과 지방의회의 종합청렴도는 69.2점으로서 행정기관·유관단체(80.3점)보다 월등히 낮았으며, 공직자의 19.38%(2023년 16%)가 지방의원이 권한을 넘어서는 부당한 업무처리를 요구하거나 갑질을 하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특히 2023년도 경기도 A시의회의 경우 응답자의 39%, 전북 K시의회의 경우 응답자의 37%가 시의원의 부정부패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따라서,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해 적합한 인물이 공천되도록 하고, 의정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와 환류시스템, 지속적인 역량강화 노력이 필요하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