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이르게 시작된 독감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울산지역 소아청소년과에는 주말에도 대기 줄이 끊기지 않았다. 큰 일교차와 실내활동 증가에 더해 예방접종이 본격화되기 전에 유행이 시작되면서 환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방역당국은 올해 독감이 최근 10년 중 가장 빠른 시점에 정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9일 오전 10시, 남구의 한 소아청소년과 대기실은 아이들과 보호자들로 복도까지 가득 찼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은 지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부모들은 아이 이마를 짚어보며 체온을 재고 문진표를 작성하느라 분주했다.
초등 2학년 자녀와 함께 온 조모(43)씨는 “환절기 감기인 줄 알았는데 열이 떨어지지 않아 급히 왔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내원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독감 의심환자”라며 “오늘은 진료 시작 10분 만에 접수가 마감됐다”고 전했다. 같은 시각 중구의 또 다른 소아과도 문을 연 지 30분 만에 대기번호가 40번을 넘겼다.
11월 들어 독감 확산세가 예년보다 빨라지면서 동네병원을 찾는 환자도 크게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44주차(10월26일~11월1일) 의원급 의료기관 기준 외래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는 22.8명으로, 전주(13.6명)보다 67.6% 급증했다. 유행 기준선의 약 2.5배에 달하며, 지난해 같은 시기(3.9명)와 비교하면 약 5.8배 많다. 연령대별로는 7~12세가 68.4명으로 가장 많고, 1~6세가 40.6명으로 뒤를 이었다. 방역당국은 “올해는 유행 시기가 예년보다 약 두 달 빨라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동네병원 접수창구에는 ‘당일 진료 마감’ 안내문이 붙고, 지역 SNS 커뮤니티에는 ‘주말 수액 10명 선착순이라 새벽부터 줄 선다’ ‘지금 가면 진료 받을 수 있나’ 등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학원가가 몰린 지역의 일부 약국에서는 타미플루 등 주요 치료제가 빠르게 동나고 있으며, 최근 소아청소년과 폐업·휴업 증가와 장염 등 다른 감염병의 동시 유행이 겹치면서 이른바 ‘오픈런’과 ‘대리 줄서기’까지 나타나 피로가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초기 대응과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열과 근육통 등 전형적인 독감 증상이 나타날 경우 등교·등원과 학원 수강을 미루고 신속히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의 한 소아과 전문의는 “독감 백신은 항체 형성에 약 2주가 걸리는데, 유행이 앞당겨지면서 접종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어진 효과가 나타난다”며 “백신 접종은 늦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정점이 빨라졌을 뿐 남은 기간 동안 중증화와 합병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