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들은 예상보다 하루 먼저 달령고개로 쳐들어왔다. 그 숫자는 일백사십여 명가량으로 숫자도 많았지만 노략질에 익숙한 정병이었다. 지형상의 이점을 선점하기는 했으나 야밤의 기습이어서 의병진영에서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눌 장군의 지휘 아래 의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번 전투는 승리가 아니라 아군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면서 적을 격퇴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울산의 동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가 된 달령 가는 길은 계곡에서 약간 위쪽으로 나 있는 길이다. 길이 완만해서 오르기가 쉽기 때문에 유일하게 전투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곳들은 무룡산에서 기박산성까지 산등성이의 양쪽이 가파른 경사면으로 되어 있어서 그냥 오르기도 숨이 차기 때문에 산등성이를 선점해서 잠복해 있으면 능히 일인이 수십 명을 상대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비슷한 성능의 병장기로는 아예 전투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눌 장군은 유일한 길목인 달령을 선점하고 왜적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의 중턱부터는 장정 서너 명이 몸을 숨기고 활로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구덩이를 파 놓았는데, 전에 이곳에서 전투를 했던 의병군들도 왜적과의 전투에서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했었다. 그럼에도 의병진영이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것은 왜적들이 조총을 소지하고 있으며, 전투경험이 풍부하고 잘 훈련받은 정병들이기 때문이다.
달령의 정상은 울창한 숲으로 되어 있어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적들을 살피기에는 부적절한 곳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그곳에는 나무들의 키 높이만한 망루가 설치되었고, 초병이 그곳에서 상황을 알려주면 장군들이 망루로 올라가서 전투를 지휘하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야간전투인지라 망루도 별 소용이 없었다. 별무리나 달빛 따위에 의존해서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달곡 저수지에서 달령까지 가는 길은 대략 삼천 보쯤 되는 길이다. 천동은 동무들과 일천오백 보쯤 되는 곳에 은신해서 적들이 그곳을 지나기를 기다렸다.
왜구들이 산 중턱을 넘어서자 신호음이 울렸다. 세 번째 신호음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의병진영에서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서 강궁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의병군의 매복조들도 길게 줄지어 고개를 오르는 적들을 일제히 공격하자 여기저기서 화살에 맞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적들을 베고 무사히 동굴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그러나 천동은 자신에게 답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은 생각과는 달리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어찌 보면 그의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 그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싸움에 임하는 어떤 병사들보다도 날렵하게 적진으로 파고들어 칼을 휘둘렀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칼춤을 추는 무당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서도 부드럽고 위엄 있는 춤사위를 보였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