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때 일이다. 추석을 보내려고 고향으로 가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휴게소 밖에 마련된 과일 가게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오육십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과일을 보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저 사과 한 삼만 원 쯤 하겠제?” 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내는 남편을 쏘아보면서 말을 했다. “뭐, 그 말이라고 하나? 당신, 돌았나?”라고 하는 것이었다. 곁에는 추석을 보내려고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은 민망한 듯 아무 말없이 아내 뒤를 따라 갔다. 나는 너무 놀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남들에게 욕을 하거나 상스러운 말을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 말 속에는 상대에 대한 감정과 자신의 인품과 성격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를 돌았다거나 미쳤다거나 하는 말은 상대를 그만큼 무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성품은 거칠고 과격하거나 품위가 낮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간혹 우리는 상대에게 “그거 말이라고 하나?”라고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ㅇㅇ같은 말을 하네”라고 하면서 무시하며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고등학교 교사때 한문 시간에 학생들에게 명심보감을 읽히고 외우게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부행편(婦行篇)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현부(賢婦)는 영부귀(令夫貴)하고, 악부(惡婦)는 영부천(令夫賤)하니라’(어진 부인은 남편을 귀하게 여기고, 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하게 여긴다.)
또 이어서 ‘가유현처(家有賢妻)면 부부조횡화(夫不遭橫禍)니라’(집안에 현명한 아내가 있으면 남편은 뜻밖의 화를 당하지 않는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 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아내(婦,妻)를 남편(夫)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부부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때 그 가정이 화평하고 행복하게 된다는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1968년에 남진이 부른 ‘마음이 고와야지’라는 노래가 있다. 거기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란 노랫말이 나온다. 남으로부터 진정 사랑받으려면 얼굴보다 마음이 더 고와야하고 예뻐야 한다는 말이다.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예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쁜 말, 고운 말은 상대의 말에 공감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칭찬하는 말이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말을 예쁘게 해야 한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