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늘 다짐의 시간이다, 그러나 산업안전, 특히 방폭안전의 영역에서 새해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복되는 사고와 구조적 취약성을 직시하고, 이제는 반드시 바꿔야 할 것을 바꾸는 실행의 해가 되어야 한다
방폭(防爆)은 말 그대로 폭발을 막는 안전이다. 가연성 가스·증기·분진이 존재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서, 점화원이 될 수 있는 에너지(전기 스파크, 고온 표면, 정전기)를 통제해 폭발을 예방하는 모든 기술과 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방폭안전은 특정 장비 하나의 성능을 뜻하지 않는다. 위험장소의 설정에서부터 방폭형 전기기기 선정, 설치·검사·정비·유지보수, 그리고 작업자의 자격과 절차 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안전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국내 방폭안전은 오랫동안 설비 중심으로 관리돼 왔다. IEC 국제기준을 준용한 방폭 설계와 장비는 상당 부분 현장에 도입됐지만, 이를 실제로 설계·설치·검사·정비·유지보수하는 사람에 대한 관리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방폭구역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을 요구하는 공간임에도, 방폭 교육을 충분히 받지 않았거나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인력이 작업에 투입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설비 노후화, 유지보수 작업의 증가, 외주화 확산까지 더해지며 잠재적 위험은 눈에 띄지 않게 누적되고 있다.
선진국의 방폭안전은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방폭은 ‘인증된 설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자격으로, 어떤 절차에 따라 작업하는가를 제도적으로 묶어 관리한다.
IECEx 체계가 강조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방폭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지키는 안전이라는 원칙이다. 자격을 갖춘 인력만이 방폭구역에서 작업하고, 교육과 재검증을 통해 역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사단법인 한국방폭협회는 2023년 5월 31일 고용노동부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를 받고 공식 출범한 이후, 협회는 올해로 3년 차를 맞았다. 지난 시간 동안 협회는 외형적 성과보다 기반을 다지는 일에 집중해 왔다. 석유화학, 정유, 가스, 발전, 배터리, 반도체, 분체·분진 산업 등 폭발위험이 상존하는 현장을 대상으로 방폭 전문인력 양성과 재직자 교육에 주력해 왔다. 방폭사고의 상당수가 설비 결함이 아니라 사람의 이해 부족과 관리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2026년은 협회에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간 방폭 전문인력 양성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고용노동부와 울산시 등 정부·지자체 국고사업 참여를 통해 산업안전 전 분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방폭을 출발점으로 삼되, 방폭전문가 양성, 방폭진단 및 컨설팅, 위험성 평가, 유지관리 체계,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을 구현하는 전문기관으로 역할을 넓혀갈 계획이다.
조직 역시 확장된다. 울산을 거점으로 하되, 여수·서산·대산 등 국가산단을 중심으로 지회 설립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조직 확대가 아니다. 폭발위험이 집중된 산업현장 가까이에서 교육과 기술 지원, 제도 개선 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현장 중심 전략이다.
최근 산업안전 정책은 ‘산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감독 인력과 행정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통계는 여전히 냉정하다.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정책 의지만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전문성, 그리고 사람 중심의 안전체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방폭 안전도 다르지 않다. 설비 기준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방폭을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2026년 병오년, 한국방폭협회는 그 전환의 한복판에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방폭을 기술이 아닌 문화로, 장비가 아닌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일. 그것이 새해 협회의 다짐이며, 우리 산업안전이 가야 할 방향이다.
박종훈 (사)한국방폭협회 공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