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제국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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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제국의 역습
  • 경상일보
  • 승인 2026.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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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터질듯한 근육질의 액션 배우나 비상한 능력을 지닌 첩보 요원이 주인공으로 나와 삼엄한 경비를 뚫고 적국의 요인을 암살하거나 본거지를 궤멸시키는 스토리로 진행되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장르 본연의 쾌감과는 별개로 항상 드는 의문이 있다. 자기네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보안망을 교란하고 군대마저 무력화한 뒤 마침내 권력자를 처단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거나 납치하는 일은 당연히 그 자체로서 범죄일 뿐 아니라, 영웅적 주인공은 항상 자국의 첩보기관과 같은 뒷배가 있으니, 그 일을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 국가권력을 상대로 벌이게 되면 전쟁이 벌어진다. 당하는 나라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자기 나라의 수반에 가한 위해를 앉아서 감수할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틀렸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인 지난 3일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특수작전사령부 소속 델타 포스가 수행한 ‘특단의 결정 작전’(Operation Absolute Resolve)으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관저에 있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가 미국 뉴욕으로 압송되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을 경호하던 쿠바 병력 32명을 포함 총 57명이 사살되었으나, 작전을 수행한 미군 병력 7명이 부상을 입었을 뿐 사망자는 없었다.

이후 진행된 일련의 형사 사법절차 역시 이 작전만큼이나 빈틈이 없다. 이틀 뒤인 5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욕주 남부 연방지방법원에서 마두로 부부에 대한 기소사실인부(arraignment)를 위한 심리가 열렸는데, 형사 피고인에게 공소장 내용을 고지하고 답변 기회를 주는 이 기일은 어떻게 미리 준비될 수 있었을까. 작전이 있기 9일 전인 지난 12월25일, 미국 법무부가 마두로 부부를 마약 테러, 무기 밀매를 포함한 4가지 범죄 혐의를 들어 법원에 기소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군사 작전을 승인했다.

이번 사건에는 미국 대통령에게 외국의 국가원수를 납치하는 내용의 군사 작전을 단독으로 승인할 권한이 있는가부터 시작해, 이렇게 신병이 확보된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수행할 관할권이 미국 법원에 있는가 등 문제가 되는 법적 쟁점이 한둘이 아니나, 이를 해석하는 도구로서 실정법은 적절하지 않다. 지면을 빌려 설명하기에 너무 많은 논증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미국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는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시설을 접수할 것이며, 미국 정유회사들에 공급되는 원유 생산분에 대해서만 경제제재 예외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원유는 베네수엘라의 최대 수출품이었으나 2019년 미국의 경제제재 결과 현재 국제시장에서의 거래가 금지되어 있는데, 이번 예외로써 수출이 허용될 원유 판매 대금은 미국 정부가 관할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군사 조치를 감행하고, 산업 시설을 빼앗은 뒤, 기업들이 진출하여 운영을 이양받은 뒤 수익을 가져가겠다는 이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미국의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서 사업을 벌이게 될 때, 그로 인한 이익들이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처럼 베네수엘라 시민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믿기에는 수일 간격으로 일사불란하게 발표되는 후속 조치들이 너무 구체적이고 이해관계인들이 많다.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에서 하게 될 역할이란, 일본이 조선을 식민 지배함에 있어 수십 년간 경제 침탈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한 동양척식 주식회사나, 영국이 인도에 설립한 동인도회사와 얼마나 다른가,

이 글의 초안을 마무리할 무렵, 미국은 이번에는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한 매수 제안과 공개 협의를 시작했다. 안보를 명분 삼은 미국 제안의 진의는 매수인가 병합인가. 덴마크와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이 제안과 협의를 거부하거나 결렬시킬 수 있는가. 이 모든 일들은 역사책에서 보던 제국주의의 발현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거듭된 의문 끝에 남은 생각은 이것이다. 재편되는 국제질서를 알아보지 못하는 맹목과, 남의 힘이 나를 지켜주리란 맹신은 매우 위험하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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