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정보가 아니라 ‘감각’으로 기억된다. 서울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한국을 그리워하고 떠올리는 순간은 고즈넉한 고궁이나 높은 빌딩 숲만이 아니다. 국악 선율의 지하철 환승 음악, 플랫폼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내음, 거리의 촘촘한 네온사인과 한글 간판. 그 작고 사소한 순간이 도시 전체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울산을 설명할 때 ‘산업수도’ ‘친환경도시’ ‘고래도시’ 같은 정보를 앞세우지만 정작 울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이런 설명이 아니다. 도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기억은 완전히 다른 결로 움직인다.
얼마 전, 타지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울산 시내를 둘러보던 날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산업시설과 탁 트인 자연 풍경에 놀라워했지만, 가장 강하게 반응한 곳은 뜻밖에도 백화점 옥상 공중관람차였다. 관람차의 화려한 조명과 도시의 불빛이 맞닿은 풍경을 보는 순간, 울산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이곳이 익숙한 필자에게조차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도심을 스치는 바람결, 관람차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 그리고 산업시설의 웅장한 실루엣까지, 도시의 여러 요소가 동시에 그들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후, 관람차가 천천히 상승하면서 시내 불빛과 산업단지의 광채가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장면이 펼쳐졌다. 바다를 향해 뻗은 도시의 선, 멀리 이어지는 산자락, 강을 따라 길게 흐르는 불빛의 띠가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 순간순간 바람에 실린 도시의 냄새와 전등의 불빛,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소리까지 어우러져, 그들의 눈과 코, 마음 모두가 울산을 경험하고 있었다. “울산에 이런 야경이 있어?”라는 그들의 말은 놀라움이 아니라 감동에 가까웠다.
그때 깨달았다.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힘은 ‘정보’가 아니라 ‘장면’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장면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뜻밖의 순간에 더 강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산업도시라는 고정관념 뒤에서 울산은 이렇게 섬세하고 감각적인 장면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도시의 이미지는 어쩌면 이 조용한 감각의 순간 속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홍보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돌아가는가의 문제다. 행정이 아무리 많은 설명과 자료를 만들어도, 여행자가 공중관람차에서 내려다본 반짝이는 야경 한 장면보다 강력하긴 어렵다. 도시 홍보의 핵심은 결국 시민과 방문객이 ‘직접 발견하는 순간’을 얼마나 늘릴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단순한 홍보 문구나 안내 자료가 아닌,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장면이야말로 도시의 기억을 만든다.
울산은 산업과 자연이 서로 얽혀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이 도시가 가진 입체감은 설명보다 경험이 먼저 닿는다. 그래서 우리는 울산의 장면들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그 장면을 마주하게 돕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작은 전망 공간 하나, 도시의 빛을 조용히 담아내는 길 하나가 울산을 기억하게 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든, 골목을 걸으며 마주하든, 그 순간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울산은 이전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바람에 실린 냄새, 불빛의 반짝임, 그리고 도시 전체가 만들어 내는 장면의 조화 속에서 울산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는다.
필자는 시정홍보위원으로서, 울산을 설명하는 말보다 울산을 기억하게 하는 장면을 더 고민하고 싶다. 도시가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그리고 사소한 순간에 존재한다. 누군가가 울산을 떠올릴 때 “거기 공중관람차의 야경이 참 인상적이었어”라고 말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도시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장 솔직한 인사인지도 모른다. 울산을 기억하게 만드는 힘은 결국 눈과 코, 귀와 마음으로 체험하는 순간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그래! 역시! 최강 울산.
박용걸 울산시 시정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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