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삶을 시간의 길이로 평가한다. 몇 년을 살았는지, 얼마나 오래 버텨왔는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 묻는다. 달력 위에 쌓이는 숫자가 곧 인생의 무게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삶을 오래 살아볼수록 한 가지 질문이 점점 또렷해진다. 삶의 가치는 과연 시간의 양에 있는가, 아니면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있는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는 언제나 스물네 시간이고, 나이와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하루라도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삶의 밀도는 전혀 달라진다. 어떤 날은 무심히 흘러가 흔적조차 남지 않지만, 어떤 날은 짧아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에 깃든 의미다.
젊은 시절의 시간은 대체로 확장의 방향으로 흐른다. 더 배우고, 더 이루고, 더 소유하려 애쓴다. 시간은 늘 넉넉한 것처럼 느껴지고, 내일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 시기에는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한계를 가진 자원이 된다. 특히 퇴직 후에는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바로 그 인식이 삶의 질문을 바꾼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된다. 이 하루를 어디에 써야 할까.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남겨야 할까.
출근과 퇴근, 조직이 정해준 역할과 일정이 사라진 자리에 선택의 책임이 놓인다. 하루를 어떻게 채우느냐는 더 이상 외부가 결정해주지 않는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 시기의 시간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삶의 방향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재료가 된다.
철학자들이 말한 좋은 삶 역시 오래 사는 삶이 아니었다. 좋은 삶이란 주어진 시간을 생각 없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였고,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 방식이었다. 삶의 가치는 결국 소유가 아니라 의미에서 드러난다.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분명해진다. 관계를 돌보는 데 쓴 시간, 자신을 단련하는 데 바친 시간, 타인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 내어준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숫자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삶 전체를 지탱하는 무게로 남는다.
그래서 어떤 삶은 짧아도 깊고, 어떤 삶은 길어도 공허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얼마나 진실하게 살았느냐다. 시간을 소비하는 삶과 시간을 살아내는 삶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퇴직 이후의 시간은 우리를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묻는다. 오늘의 하루는 어디로 흘러갔는가. 그 사용은 내가 바라는 삶의 방향과 맞닿아 있는가. 삶은 반드시 늘어날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가 의미로 채워진다면 충분하다. 결국 인생은 시간의 총합이 아니라, 의미 있게 사용된 순간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