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네를 믿기 때문에 따라온 것이네. 자네가 알아서 잘 이끌어 주게.”
“세월의 무게만큼 쌓인 어르신들의 그 경험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항상 어르신들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알았네. 글자를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의견을 내서 돕겠네.”
“어르신들, 감사합니다. 저녁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진지 드셔야지요.”
천동과 마을 어른들은 각자 기다리는 가족들에게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튿날 이백여 명의 백성들이 그들만의 낙원을 꿈꾸며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걷는 긴 행렬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족이라는 힘이 작용해서인지 한 점 흩어짐이 없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아녀자와 노약자가 있어서 이동속도에 제약을 받은 탓에 그날 저녁 무렵에서야 너구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그곳에서 하룻밤을 더 보냈다. 다음 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한나절을 걸어서 겨우 금은광이재 삼거리에 도착했다. 일단 잠시 쉰 후에 출발하기로 하고 짐을 내려놓았다. 천동은 일행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한마디 했다.
“여러분! 이 고개만 넘으면 우리는 눈물세상을 벗어나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켜고 사는 광명세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힘드시더라도 조금 더 견디세요.”
천동의 말에 다들 공감하며 서로를 격려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정착지인 내원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한겨울이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산속 분지 내원마을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수년 전부터 그곳에서 정착해 있던 정착민들은 이주해 온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면 도적의 무리이나 산짐승을 겁낼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도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저수지를 만들거나 산지를 개간하기에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기꺼이 새로운 마을 식구들을 환영한 것이다.
이주하는 사람들이 임시로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천동과 정착민들이 손을 써 놓은 관계로, 산중에서 오돌오돌 떨면서 또 하루를 보내야 하는 괴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비록 단기간 내에 엉성하게 지은 움막이라서 집이라기보다는 그저 찬바람을 겨우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지만 울산에서 간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유지하여 그런대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환영잔치가 벌어졌다. 돼지를 세 마리 잡아서 부위별로 음식을 장만하고, 막떡인 가랍떡을 넉넉히 해서 최소한의 분위기를 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한 시진이 지난 후에 잠시 분위기를 정리하고는 최고령자로 이곳에 먼저 정착한 정광 노인과 천동이 한마디씩 하였다. 정광이라고 불리는 노인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극구 사양했지만 먼저 정착한 정착민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한마디 하라고 등 떠밀어서 겨우 짧게 한마디 하고 끝냈다.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