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은 1597년에 주인 없는 말을 몰고 울산으로 간 것을 기억해 내곤 동무들과 함께 기병용 말들이 대규모로 머물렀었던 곳을 중심으로 수색을 하여 금오산 부근에서 일곱 필의 떠돌이 말을 구해 내원마을로 돌아왔다.
말 한 필의 가격이 노비 세 명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다는 것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말들을 구경하러 나왔다.
“말 가격이 상당할 텐데 어떻게 구해 왔습니까?”
“명나라 군대가 전투나 이동 중에 잃어버린 말 중에 대구 부근에서 떠도는 말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야생마는 붙잡기가 힘든데 용케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한 것입니다. 달리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 말들은 앞으로 마을을 위해서 요긴하게 사용할 생각입니다.”
“이 말들도 마을 공동재산으로 할 건가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천동이 웃으면서 너무도 쉽게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천동과 동무들을 더 믿게 되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이들은 한결같은 자세로 마을을 위해서는 모든 걸 내어놓는 사람들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성공하려면 서로 간의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 그 믿음의 중심에는 지도자격인 사람들의 언행이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믿고 따르는 다른 사람에게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다면 공동체는 발전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내원마을에서 1599년 3월1일(음력) 3차 마을공동회의가 열렸다. 가장 먼저 이 마을에 정착한 최고령의 70대 정광노인과 천동의 동무 강목, 대식, 관노비 출신의 민유신, 형지, 완석, 60대의 추하, 50대의 성수, 양천동 등 9인의 마을 대표와 이백오십여 명이 마을 분지에 모였다. 천동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어떤 왕조도 백성들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고려의 충신이었던 정몽주도 천출이 고관대작이 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조선을 설계했다던 정도전도 말로는 백성을 위한 역성혁명을 외쳤지만 결국은 군왕과 양반 사대부를 위한 나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같은 천것들은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곳을 피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에서 모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두레마을을 건설하고 있는 중입니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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