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는 115만여명이 모여 사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남녀노소 모두 울산에 사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태어난 곳이기에, 이사를 와서, 직장을 찾아서, 결혼으로 등등…. 하루를 살더라도 울산사람입니다. 그래서 울산사람은 삶의 터를 잡은 만큼 사랑과 관심으로 울산을 가꿔나가야 합니다. 울산에 산다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 연령별 울산사람이 울산에 사는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아름답고 안전한 울산 참 좋아”

◇김민경(18·신선여고 2학년)
“울산은 참 살기 좋은 도시에요”라는 광고 문구처럼 울산은 정말 살기 좋은 도시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적어도 고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는 울산은 살기 좋은 도시인 것 같다.
아파트 바로 옆에 오리 가족들과 왜가리가 살고 있는 여천천이 있고, 여천천을 따라 걷다보면 너무나 멋진 울산도서관이 있다. 엄마랑 나는 걷는 걸 좋아해서 걸어서 울산도서관에 가곤 한다. 또 조금만 더 걸어가면 선암호수공원이 있다. 선암호수공원부터 이어진 솔마루길을 따라 울산대공원을 지나 울산과학관 뒤로 남산길을 한참 걷다보면 십리대숲과 함께 태화강국가정원이 보인다. 2019년 지정된 태화강국가정원도 나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국가정원에 있는 많은 맛집들을 다 가보는 것도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지 검색해 보았다. 도시생활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다양한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제공하는 여유롭고 안전한 도시라고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고향 울산이 살기 좋은 도시다.

“아이들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로”
◇전해랑(23·중구 유치원 교사)
전국곳곳 문화재 발굴현장을 관리하는 아버지, 대학에서 강의하는 엄마와 살고 있다. 무남독녀지만 부모님은 내가 외로워 할 틈을 주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단위 역사탐방을 다녔다. 언제나 주변 가족과 이웃이 함께 했다. 또래 아이들이 언제나 가득했다. 바쁜 생활 중에도 오롯이 자녀와 함께 해 준 부모님이 정말 감사하다. 직장인이 된 지 겨우 3개월 째. 매일 아침 아이들의 얼굴을 대하는 일이 즐겁다. 아이들에겐 사그라들지 않은 에너지가 있다. 그런만큼 책임감이 무겁다. 아이들과 안전하게 보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원에서의 일을 가정에서도 알 수 있도록 알림장을 작성하는 것부터 업무상 필요한 서류정리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 모를 정도다. 가끔 뉴스에서 아이들과 관련한 가슴 아픈 사건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우리 사는 울산은 무조건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20년 뒤 이들이 자라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 성장기를 돌아보며 행복한 도시에서 건강하게 지냈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연령 고려 코로나 지원사업 원해”
◇김언지(37·남구 방송인)

신종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셨다. 방송현장에서 만난 분들 중에는 삶 자체가 직격탄을 맞은 분도 계셨다. 그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활동기반을 잃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유튜브 ‘언지TV’를 통해 공유했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더 심했다. 울산에도 꽤 괜찮은 상품이 많았는데, 그 동안의 방송경력을 살려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라이브 커머스(소비자와 소통하며 상품을 소개하는 스트리밍 방송)를 수수료 없이 운영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K-Startup’ 공모에 선정돼 관련 플랫폼도 곧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방송생활 17년 중 지난 1년이 가장 큰 변화의 시기였던 것 같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받은만큼 돌려주며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각종 지원책이 많은데, 지원금도 위로가 되겠지만, 연령대별 사고와 수행능력을 고려한 지원사업이 많았으면 한다.

“퇴직노동자들이 빛나는 곳 되길”
◇박문옥 (45·전 동구의회 부의장)
친정아버지는 울산 강동 정자에서 이발소를, 어머니도 옆 점포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하셨다.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가게 앞 동네 길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셨는데, 그 부지런함으로 4남매를 키우셨다. 그런 어머니에게는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규칙적인 가정경제를 위해 아버지가 월급 받는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7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은 아버지의 직업이 참 좋단다. 이발기술이 있어 건강이 허락하는 한 퇴직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퇴직한 선배님들이 많은데, 1년도 채 되지 않아 생활의 고충을 이야기 한다. 퇴직 후 삶에 대한 준비도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울산을 만들어 왔고, 지금의 울산을 만들고 있는 노동자들의 퇴직 후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먼저 퇴직해 어려움을 겪어 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좋은 제안이 많다. 말 그대로 퇴직노동자들의 제2의 인생이 빛나는 울산이 되기를 바라본다.
“울산의 신성장사업 발전 기대”
◇김종성(56·남구 금융인)

울산에서 나고 자라 울산에서 꾸준히 정착하고 싶어 BNK경남은행에 입사했다. 2011년 1월에는 울산중앙지점장으로 발령받았고, 눈이 많이 오던 날, 신규 거래처 유치를 위해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업체의 여신지원을 도왔는데 우연한 계기로 당시 나의 활동들이 경상일보 신문에 게재됐다.
소소한 기사지만, 당시 지점장 생활에 큰 힘이 됐고, 10년이 지나서도 잊지 못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 지역신문과 함께 한다. 금융업뿐 아니라 지역 내 산업 현황을 다양하고 자세하게 다뤄주고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경상일보를 통해 지역산업에 대한 알찬 정보들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한다. 최근 들어 조선, 자동차, 화학 등 울산지역의 주력산업들이 힘든 시기를 맞았고, 꿋꿋하게 잘 이겨 나가고 있다. 울산시는 이에 더해 수소, 친환경 에너지 등 새로운 산업을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시가 추진하는 신성장산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경상일보가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취재·보도해주길 바란다.

“평생 함께 해온 웅촌, 번성하길”
◇조정래(61·울주군 웅촌면)
웅촌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내고 있는 토박이다. 인구가 2만명에 육박하던 시절의 웅촌부터 7000명대로 줄어든 지금의 웅촌까지, 고향의 성쇠를 지켜보고 있는 산증인이기도 하다.
번성하던 웅촌의 점진적인 쇠락은 울산시의 정책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회야댐 인근 지역이라는 이유로 각종 기반시설 조성에 제약을 받다 보니 인구가 들어오기는커녕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도심에서는 그 흔한 목욕탕마저도 개인이 짓지 못해 울주군에서 지어주는 데 인구가 유입될 수 있겠나. 허허벌판이었던 인근 웅상이 크게 번성하는 동안 웅촌은 개발에서 소외돼 그저 아쉬울 뿐이다.
몇 년 동안 회야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울산시와 이견을 빚다 결국 이주 대책의 일환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주지 역시 웅촌면 내로 사실상 결정된 만큼 여전히 웅촌 토박이로 계속 살게 된다. 앞으로 울산시와 웅촌 기관·단체들이 심도 있게 의논해 지역 발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도시계획을 수립해 웅촌이 다시 예전처럼 번성할 수 있길 바란다.
“노인들 위한 일자리 많아졌으면”
◇최종길(73·북구 농소동)

현대자동차에서 31년간 일하고 퇴직한지 어느덧 17년이 지났다. 지금은 경로당과 북구노인지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노인복지 향상에 힘쓰고 있다. 또 봉사단체 4곳에 소속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몇년 전부터는 구청과 북구노인지회가 진행하고 있는 노인일자리 생태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텃밭에서 가꾼 감자와 고구마 등 각종 농작물들은 우리지역의 복지관 급식소와 식당 등에 공급된다. 우리 같은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노인들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참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집안에만 있는 것보다 밖에 나와서 사회생활에 참여해야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노인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울산에 노인들을 위한 건강한 일자리가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울산시민들이 모두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의 위기를 잘 넘겨서 울산의 경제가 다시 회복되길 바란다.

“어려운 사람에 힘주는 울산 원해”
◇마호용(82·동구 화정동)
울산에 거주한지 40여년이 됐다. 대구가 고향인데 울산에 정착하고 나서 자녀를 얻었다. 사업이 잘 안돼 울산에 왔다. 살면서 IMF, 광역시 승격 등 굵직한 일은 모두 겪었는데 울산이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
울산에서 거주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자녀들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 초에 아내와 사별하는 등 희노애락을 겪었다.
울산에 살면서 무엇보다 예전보다 교통이 편리해져서 만족스럽다. 중구와 남구, 동구에 다 거주해봤는데 동구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울산대교와 염포산터널이 뚫리고는 한결 이동이 편해졌다.
동구에는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가 있다. 나도 막노동, 목수 등 일이란 일은 다 해봤다. 사고로 사람이 죽고, 이걸로 매번 동네에서 집회나 데모가 벌어지니까 보기가 좀 그렇다.
울산에 대기업들이 많은데 노동자들의 안전을 경시하는 것같아 안타깝다. 가진 사람보다 못 가진 사람에게 힘을 보태주는 울산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