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동의없는 통화 녹음 규제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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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동의없는 통화 녹음 규제의 필요성
  • 경상일보
  • 승인 2022.02.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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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자신도 모른채 상대방으로부터 대화나 통화를 녹음당하는 일은 당황스럽고 불쾌하다. 제3자가 타인간의 통화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는 이른바 도청으로서 통신비밀보호법위반이지만 대화나 통화의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과의 대화나 통화를 녹음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녹음할 수 있다. 요즈음에는 스마트폰에 녹음 기능이 장착되어 있어 통화 녹음 모드를 상시 활성화해 놓거나 언론 취재의 특성상 직업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고 하니 일상에서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적 인물이라는 이유 또는 공적 감시 기능을 명분으로 언론과 통화한 내용이 녹음되어 방송되기도 한다.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통화 내용중 전후 맥락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은 채 공표되면 진의나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 발언자는 심히 곤혹스럽다. 심지어 기자라고 하면서 전화를 걸어와 감정을 자극하거나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답변을 녹음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용하여 말의 앞뒤 부분을 잘라버리고 짜깁기하여 편집한 방송물은 언론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배신이고,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표 행위는 타인의 내면이나 비밀스런 부분에 대한 시청자들의 본능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대중의 암묵적 지지를 받는다. 이러한 지지를 정당성의 기반으로 악용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대선 후보 본인의 가족간의 통화나 후보 배우자의 언론과의 통화가 녹음되어 방송되기도 하였다. 후보자 검증이라는 공적 사안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명확한 것도 아니어서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명예훼손의 문제가 제기된다. 공표하는 측에서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의 공적 감시 기능을 내세운다. 하지만 언론의 윤리적 책임을 생각한다면 녹음했어야 할 경우 녹음 취재라는 상황을 상대방이 인지하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동의받고 녹음해야 한다면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애초에 언론과의 대화나 통화를 피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녹음의 고지는 취재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개인이 사적으로 녹음한 것을 받아서 언론이나 제3자가 공표하는 경우 사생활 침해의 문제는 심각해진다.

현실적으로 통화나 대화의 녹음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범죄를 입증하거나 사실 규명을 위하여 상대방과의 대화나 통화를 녹음하여 사용하는 경우다. 상대방이 녹음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허언을 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이러한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지만) 녹음 내용은 증거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일방 당사자가 상대방과의 대화나 통화를 녹음하여 제3자에게 제공되거나 공표하면 명예훼손죄가 될 수 있다. 동의없는 녹음행위는 개인의 음성이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녹취, 방송 또는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침해다. 즉 인격권 침해의 불법행위로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입법례에 따라서는 상대방 동의없는 녹음을 범죄로 보거나(미국의 일부 주나 프랑스 독일), 녹음은 가능하지만 제3자와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한다.(영국이나 일본)

누구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격권 등의 헌법상 기본권과 함께 자기정보결정권을 갖고 있다. 통화와 대화의 비밀 녹음이나 녹음의 제3자 제공 또는 공표는 이러한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민사적 책임을 넘어 일정한 경우 제도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녹음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권 침해의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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