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31)]교실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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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31)]교실난로
  • 이재명 기자
  • 승인 2019.12.16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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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얼마 안 있으면 겨울방학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때는 겨울이 왜 그렇게 추웠는지. 방학은 아직 멀리 있는데 담임 선생님은 난로를 놓을 생각도 안 하셨다. 아이들은 발가락에 동상이 걸려 발등이 퉁퉁 부어올랐다.

이윽고 교실난로가 들어오는 날, 담임 선생님은 조개탄을 한 통 갖다 놓고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장작 몇개 걸쳐 놓고 그 아래에 신문지를 태우면 교실은 온통 너구리 잡는 장소로 변했다. 선생님은 장작이 이글거릴 때 그 위에 조개탄을 왕창 쏟아부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너에게 묻는다’ 전문(안도현)

연탄이 등장한 것은 1920년대 일본인이 평양공업소를 세우면서다. 초기에 연탄은 조개탄 형태였으나 기업가가 연탄에다 구멍을 뚫으면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조개탄은 그야말로 조개처럼 생겼는데, 화력은 엄청났다. 아이들은 서로 난로 앞에 앉으려고 했다가 화력이 구석구석까지 미치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아침부터 얼음치지기를 하다가 물에 빠진 아이들은 난로에 양말을 널다가 홀랑 태워먹기도 했다.

 

교실난로의 진가는 4교시부터 발휘된다. 양은 도시락(일명 ‘벤또’)이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배꼽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벌써 아래쪽의 도시락에서는 타는 냄새가 난다. 선생님은 일일이 도시락을 바꿔 쌓아 주었다. 꽁보리밥에 고추장만 싸온 놈, 김치가 온통 책보에 엎질러진 놈, 반찬으로 싸온 ‘기다리’(미역귀)를 아침나절에 다 먹어버린 놈까지 별별 아이들이 다 있었다.

상급생들은 도시락을 먹기 전에 ‘도시락 검사’도 맡았다. 선생님은 밥에 보리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이 보리밥이었지만 일부 부유층 집에서는 쌀밥 도시락을 갖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벌을 주는 대신 쌀밥과 보리밥을 섞어 주었다.

산골 학교는 가난했다. 교장 선생님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만 난로를 피우도록 했다. 교장 선생님은 한번도 ‘바께스’ 그득 조개탄을 주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조개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조개탄 우습게 보지 마라. 그 조개탄은 누군가에게 버거운 삶을 버티게 해준 생명줄이었다. 이 나라가 이 정도 된 것은 한알 한알의 조개탄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겨울, 그대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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