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하였던 제20대 대선이 끝났다. 당선자가 5년 동안 민심을 통합해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취임초 장밋빛 약속이 잿빛으로 바뀌었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닌데 그 가운데에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대선 즈음에는 개헌 논의가 늘 있어 왔다. 권력 구조 개편이 명분이다. 승자독식의 5년 단임제로 인하여 퇴임후 대통령들이 불행을 겪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뀌어야 협치와 국민통합이 가능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외교, 국방, 안보에 책임을 지고 국내 정치나 경제는 총리가 맡는 이원정부제가 주로 거론된다. 사실 권력의 오남용이나 부정 비리 등이 헌법 제도 탓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헌정 이래 처음 이루어진 대통령 탄핵의 헌법적 조치는 법치가 공고화되었다는 징표일 수 있음에도 진영논리에 입각한 편가르기와 오만, 위선과 부패의 후진적 정치문화는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은 민주주의 이정표였다.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절묘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5년 단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연결될 수는 없다. 4년 중임제라야 임기말 레임덕을 가져오는 5년 단임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통상 이야기한다. 하지만 5년간의 제왕적 권력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4년 중임제가 오히려 재선을 위한 포퓰리즘을 가져온다고 걱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단임제가 반드시 나쁘지 않다. 의회 권한이 강화된 의원내각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내각제에 대한 정치적 경험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당리당략에 따라 이루어지는 개헌 논의는 추진 동력을 갖기 어렵다. 사실 지방 권력을 석권한데 이어 3분의 2에 가까운 의회 권력을 획득한 현재의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개헌 추진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경제위기와 코로나 등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논란이 있는 한 권력 구조 개편을 둘러싼 개헌의 불씨는 언제나 살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현실은 헌법 제도 탓보다는 대통령제라는 정부형태에서 비롯된 실제 운영과정에서의 권력 오남용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대통령제 자체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헌법 제도의 운영 방식과 선거 등 구체적인 제도의 설계 및 정치적 조건과 문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대의기관에 의한 민주적 통제나 국가권력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애초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도 국무위원 추천권을 실질적으로 총리에게 주는 책임총리제나 청와대 권한을 축소하는 방법 등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하는 경우 선거제도 등 정치관계법을 바꾸고 비효율적인 국회를 생산적으로 만드는 방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국가기관 신뢰도에서 국회가 최하위인데 그대로라면 대통령 권력에 대한 대의기관의 견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국회가 통법부 역할을 한다면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선거 및 공천제도의 개혁에 더하여 국회의원 임기 제한 등의 정치 개혁이 필수다. 현행 헌법상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구성에 관한 대통령 권한 등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비추어 합당한지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정치인들과 정당들이 대통령제의 특성을 이해하고 긍정적 방향으로 제도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의지와 실천이 없다면 제도 변화는 순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국민은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동시에 권력 분산으로 견제와 균형에 의하여 권력의 오남용이 없기를 바란다. 정치 문화의 성숙에는 국민들의 각성과 감시 또한 중요하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