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읍지는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艮絶旭肇早半島)’라고 했다. 우리나라 육지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상징성을 가진 간절곶은 2003년 해맞이를 콘셉트로 한 공원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록 이름에 어울리는 독창성 있는 경관을 갖추기는커녕 간절곶 표석, 소망우체통, 거북과 용 장식의 새천년 돌비석, 풍차, 박제상 부인과 두 딸의 모녀상, 어부상, 반구대암각화 기념비, 시계탑, 울산큰애기노래비 등 정체불명의 조형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섰다. 십수년에 걸쳐 수많은 비판이 오갔다. 마침내 2017년 이들 조형물을 한편으로 모으는 정비를 했다.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인 다음에야 비로소 공공장소에 조형물을 함부로 세워서는 안 된다는 시민적 합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민적 감수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조형물이 자치단체와 관변단체에 의해 버젓이 들어섰다. 민주평통울주군협의회는 “지난해 방문한 제주 환태평양평화공원을 본떠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간절곶에 평화통일기념비를 설치하면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곳을 ‘평화공원’으로 조성해나갈 예정이라면서 5일 조형물 앞에서 ‘2022 울주 평화플랜 발대식’을 가졌다.
일부 공간이긴 하지만 간절곶에 ‘해돋이’가 아닌 다른 이미지를 심는 것은 특정단체가 자의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도심 곳곳에 쓸모없는 조형물을 곧잘 세우는 또 다른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가 있으면 그땐 또 어쩔 건가. 공공장소에 조형물을 세울 때는 예술적 조형성은 물론이고 시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특히나 ‘간절욱조조반도’라는 간절곶의 상징성은 함부로 퇴색시켜서는 안 되는 우리 국민적 자산이다. 공연한 선례가 되지 않도록 난데없는 조형물을 당장 철거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