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35)]젠체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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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35)]젠체하는 사회
  • 경상일보
  • 승인 2022.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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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 사실 그렇다. 세상을 둘러보라. 시끄러운 건 대부분 빈 수레들이다. 아는 체하고, 있는 체하고, 젠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알아도 모르는 척, 있어도 없는 척, 잘났어도 못난 척하는 겸손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인 A는 아는 척, 있는 척, 젠 척하는 것이 양념처럼 잘 버무려진 장광설이 특기다. 지인 B는 명품 옷차림에 외제 차를 몰고 다닌다. 만나면 젠체가 다반사다. 그냥 젠체만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은근슬쩍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깔보기도 한다.

포장이 잘 된 물건 중에 내용물이 포장지에 못 미치는 경우를 본다. 포장지는 큰데 든 것은 볼품없이 적을 때가 있고, 포장지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고급인데 담긴 내용물은 싸구려일 때가 있다. 사람도 그렇다. 포장이 두꺼울수록 그 실체는 더 얇다.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여겨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포장은 벗겨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면 대체로 그 사람의 본래의 가치보다 더 저평가되기 쉽다. 그런데 포장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포장이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까 노심초사하면서 점점 포장지의 두께를 늘리는 이가 많다.

속담에 ‘가짜 금은 도금할 수 있지만, 진짜 금은 도금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체하고 포장하는 것은 내가 가짜 금이기 때문이다. 진짜 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도금은 시간이 지나면 벗겨진다. 벗겨지지 않는 도금은 거의 없다. 도금도 그럴진대 하물며 포장이야. 포장이야 곧바로 뜯긴다. 그러면 실체는 바로 드러난다. 그런데도 사람은 포장에 신경 쓴다. 포장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내용물에 들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용>에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운다면 능해지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으며,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묻는다면 알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하면 얻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는다. 남이 하나를 할 수 있으면 자기는 백을 하고 남이 열을 할 수 있으면 자기는 천을 한다. 이렇게 하면 비록 어리석어도 반드시 밝아지며 비록 연약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그저 얇은 포장으로 젠체하는 것으로 남을 속이려고만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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