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우의 경제옹알이(15)]인종차별을 당하고 능력주의가 중요함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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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우의 경제옹알이(15)]인종차별을 당하고 능력주의가 중요함을 알았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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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에서 12년 정도 살았었다. 절반은 학생으로 나머지 절반은 교수로 살았다. 교수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힘들었다. 인종차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종차별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기분은 좀 나쁘겠지만 그냥 신경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종차별이라는 단어에서 외국인 관광객으로 기분 나쁘게 감수했던 손해 정도를 떠올린다면, 그건 인종차별을 거의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군대에서 이등병이 잘못을 떠넘기는 병장에게,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떠올린다면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가 거대한 사회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절망과 비슷하기도 하다. 병장에게 찍힌 이등병에게 탈영밖에 해결책이 없어 보이고, 며느리가 이혼 밖에 방법이 없음을 생각하고, 탈영과 이혼이 가져올 극도의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함과 비슷하다.

그리고 그 절망감이 내 잘못이 아닌 그저 내가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비참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며 인종차별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더더욱 우울해진다. 잘못을 내가 한 것이 아닌데, 슬프게도 나에게서 잘못을 찾고 있다. 그래서 보통은 맞서 싸우기 보다는 계속 피하게 된다. 인종차별을 마주칠 환경에 접근도 하지 않거나, 마주치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빠르게 빠져나온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어를 못 하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인종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언어로 인해 차별을 받고, 그것을 인종차별로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사실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미국에서 교수를 한 내 기준에서는 영어로 강의를 편하게 하고, 미국학생들과 수업시간에 질의응답과 토론이 잘 이루어지면 영어를 잘 하는 것이다. 그 단계까지는 도달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학생들과 술을 마실 때, 학생들이 적당히 술에 취해 더 이상 외국인 교수에 대한 배려를 해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대화의 주제가 정신없이 바뀔 때, 내 영어는 따라가지 못했다. 술자리 영어는 난이도가 높았고,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나는 더 이상 따라가는 것에 한계를 느꼈었다. 마이클 잭슨의 이야기는 참여할 수 있었지만, saw movie에 관한 이야기는 설명을 들어도 참여할 수 없었다. 술자리 영어의 높은 벽에 절망을 느낀 나는 영어를 미국인만큼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차별을 인종차별로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일본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였다.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했다. 생활하는데 있어서의 불편함은 일본이 훨씬 더 컸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마음은 더 편했다. 일본 편의점과 식당에 들어가면 당연한 듯이 나에게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물건을 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불편했지만, 나는 일본인으로 인식되었다. 미국과는 달랐다. 미국에서는 걸어만 다녀도 외국인 티가 났다. 미국 시골의 식당에 들어가면 종업원이 긴장하는 것이 얼굴에 보였다. 저 동양인이 영어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표정이 보였다. 내가 영어로 주문을 하면, 긴장한 표정이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일본에서는 그 긴장한 처음의 표정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국인 종업원이 나를 보자마자 긴장하는 것이 어쩌면 인종차별에 가까웠다면,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는데, 일본어를 하지 못해 일본 종업원이 긴장하는 것은 언어로 인한 차별에 가까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상에서 본질을 찾아낸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인터뷰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자 했다. 내가 나도 유학생활을 했고, 외국인으로 사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고 말하자, 외국인 유학생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내가 미국생활을 하면서 많이 어려웠기에, 외국인 유학생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차별받지 않고 편하게 내국인으로 살고 있었다.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차별은 매우 광범위한 가치와 피해자를 포괄하고 있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지역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모두에게 쉽게 공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국가차별 보다 정확히는 일본차별의 경우에는 다른 기준과 가치가 더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원리는 동일하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또는 우연에 의해 결정된 것이, 중요한 판단기준이 또는 자신의 욕망을 타인의 욕망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결정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 글에서는 비차별주의 또는 능력주의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동시에 차별의 문제는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또 거대하다. 차별이라는 결과는 직접적인데, 구조적 해결은 어렵고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조급함에 현상만을 해결하는 정책은 다른 문제점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우연에 의한 요인들이 중요 결정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리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국가차별은 나쁘지만 일본은 역사적 문제가 있으니 차별해도 된다든지, 남녀차별은 나쁘지만 여자는 군대를 가지 않으니, 남자는 출산을 하지 않으니 이 정도는 괜찮다는 논리가 계속 생산되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당해보면 알게 된다. 능력주의가 왜 중요한지를. 차별이라는 결과적 현상에 대한 해결도 해야 하지만, 더 어렵고 근본적인 것은 우연에 의해 결정된 것이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교육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종차별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인종차별 이슈는 차별에 의한 피해자 보상 문제가 한국에서는 아직 크지 않아 원리의 정립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간단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차별에 대한 기준은 모두가 다르고, 차별에 대한 보상정책에 집중하면 더 어려워진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그런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차별과 비차별을 나누는 규정이 아닌, 차별을 줄이기 위한 공감과 방향성을 기준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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