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의 마음건강(26)]작은 손해로부터 배우기: 나의 변화로 악순환 벗어나기
상태바
[정두영의 마음건강(26)]작은 손해로부터 배우기: 나의 변화로 악순환 벗어나기
  • 경상일보
  • 승인 2022.04.22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받으며 독립된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합니다. 처음에는 가르침을 따라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부분이 늘어납니다. 부모님이 사주시는 옷과 학용품을 쓰다가 핸드폰, 노트북 같은 고가의 제품도 용돈 상황, 가격 동향, 내게 필요한 사양을 따져가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충동적으로 돈을 써서 곤란해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재기만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소비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 갑니다.

비교적 간단한 소비에서도 실패를 통해 배우는데 진로나 대인관계 같은 복잡한 목표를 실패 없이 잘 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제도가 특정 과목의 시험점수로 상대비교를 하다 보니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능력이 강조되진 않습니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학점에만 집중하게 돼 학교 차원에서 보완 장치들을 마련하느라 고심을 합니다. 학부 학점이 더 낮았던 학생의 대학원 성과가 더 좋은 경우도 자주 보게 됩니다. 현실의 일은 정답이 있는 지필고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학생과 함께 연구를 해야 하는 교수들은 대학원생을 선발할 때 좋은 후보를 뽑기 위해 고민합니다.

공부나 연구 외에 많은 삶의 영역들이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가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청년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니 더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해도 되나, 재테크는 언제 해야 하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직간접 경험으로 확실하진 않지만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목표한 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노력하고, 그 결과를 복기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강화학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반복된 패턴 학습이 얼마나 정교한 결과물을 보여주는지 관찰했습니다.

패턴을 배우려면 결과가 명확해야 합니다. 개와 고양이 사진을 구분하는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매우 많은 사진과 이것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알려주면 됩니다. 비슷하게 사람도 자신에게 유익한 행동을 더 하게 하려면 행동의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잘 연결시키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익한 행동의 결과는 한참 후에나 생기기에 당장 잠시나마 불편한 감정을 피할 수 있는 행동을 늘리는 쪽으로 오류를 범합니다. 만약 건강한 식사나 운동을 하면 바로 식스팩이 생기고 어기면 바로 똥배가 나온다면, 다이어트가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한 음식은 맛도 없기에 금방 피하는 것을 배우지만 당장은 맛있지만 시간이 지나서 후회할 음식을 피하는 것은 쉽게 배울 수 없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피로도 덜 느끼고 옷태가 나서 기분도 좋지만 한 번 운동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흔한 정신적 어려움이 이런 악순환에서 발생합니다. 간수치가 나쁜 중독자가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은 다른 즐거울 일이 없는데 술을 마시면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간으로 고생하는 것은 당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점과 스펙에 신경이 쓰이지만, 꼭 경험해볼 일이 있다면, 내게 중요할 것 같다면 확실하지 않더라도 작게 시도해봐야 합니다. 이 사람과 깊이 사귀어볼 필요가 있다면 작은 손해는 감수해야 합니다. 반대로 너무 위험한 결정도 피해야 합니다. 인공지능도 반복을 통해 학습합니다. 너무 위험한 결정으로 다음 번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배울 수 없습니다. 시도의 성공과 실패는 즉각적인 느낌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내게 유익한가로 스스로 평가해야 합니다. 일기를 쓰는 등 하루를 정리하며 복기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복기해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경우는 새로운 시도도 못하고 복기도 안 될 때입니다. 주변 탓만 하며 변화를 거부합니다. 잘 안 되는 일이면 더 열심히 할 수도 있고 그만 둘 수도 있는데 현재만 유지하며 괴로워합니다. 도움을 찾을 때조차 온갖 걱정이 앞서서 정작 조언을 제대로 듣지도 못합니다. 완벽하게 위험을 피하려다 괴롭게 흘러간 시간의 낭비가 인생에는 더 큰 위험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순환이 지속되면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환경에서도 더 멀어지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 작은 손해를 감수하고 변화를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발언대]위대한 울산, 신성장동력의 열쇠를 쥔 북구
  • [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복효근 ‘목련 후기(後記)’
  • 울산 남구 거리음악회 오는 29일부터 시작
  • 울산시-공단 도로개설 공방에 등 터지는 기업
  • 울산 북구 약수지구에 미니 신도시 들어선다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4)충숙공 이예 선생 홍보관 - 접근성 떨어지고 자료도 빈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