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중국 사법부의 일대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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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중국 사법부의 일대일로
  • 경상일보
  • 승인 2022.04.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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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2021년 1월, 중국 정부는 ‘법치중국건설계획(2020~2025년)’을 공표했다. 이 정부계획은 공산당 지도부가 법치국으로서의 체제를 정비하고 헌법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에 고유한 사회주의 법률체계를 완비하겠다는 목표 하에 수립된 것이다. 이 가운데 법률 규범 체계 건설을 위해 중점 분야, 신흥 분야와 더불어 국제 분야 관련 입법을 강화하겠다는 언급이 있어 주의를 끈다. 관련 내용을 상술하자면 이렇다. 중국이 국제법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과, 국제 분쟁의 법적 해결에 있어 우선적 관할국의 역할을 담당할 것, 그리고 중국법을 해외에서도 적극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표면적인 목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제 규범을 증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있었던 실제 사례들은 그보다는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법적 분쟁의 주관자가 되려는 것으로 읽힌다.

2020년 11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국제분쟁에 대한 중국의 보다 단호한 태도를 주문하면서 중국이 자국의 지적재산권법의 역외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미국 UC 버클리 로스쿨의 마크 코헨 법률기술센터 소장은 시 주석이 영토 밖에서 중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법권을 무기화한 것이라고 평했다.

지난 수년간 중국 법원들은 화웨이, 오포, 샤오미와 같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자국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외국기업들의 지적재산권을 무단 사용한 데 따른 소송을 다른 나라의 법원에서 제기당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명령(禁訴令, anti-suit injunction)을 신청하자 이를 인용해 왔다. 통상 이러한 종류의 분쟁들은 일정 로열티를 지급하는 내용의 재판 외 화해로써 종결되는데, 전문가들은 중국 법원의 인용 명령이 자국 기업들에 보다 유리한 내용으로 화해가 이루어지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미국 유타 대학교 로스쿨의 조르주 콘트라레스 교수는 이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도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사법권의 행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참고로 이 제도는 삼성전자와 에릭슨 간 상호특허 사용계약 연장 관련 분쟁에 있어 에릭슨측이 미국 텍사스 주 소재 연방법원에 특허침해를 이유로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에 대해 삼성전자측이 중국 우한법원에 금지명령을 신청하고, 이것이 2020년 12월 인용됨으로써 국내기업 관련 분쟁에도 사용된 적이 있다.

중국 정부의 역점 국제사업인 일대일로에 참여한 중국 기업들, 은행들과 현지 기업들 간 분쟁에 있어서도, 2019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국제상사분쟁 심리와 중재절차 개선, 재판상 화해를 주재할 수 있는 중국 법원의 역량 강화를 명시적으로 주문하고 실제로 다음 해 관련 분쟁을 전담할 국제상사법정(CICC)을 구성하고 전문가 패널 24명을 임명함으로써 중국 법원의 역할을 구체화했다.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의 발로라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중국 사법부의 동향을 연구하면서 든 내 생각은, 뭔가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국제 거래에 있어 준거법이나 관할 법원 또는 분쟁해결기구를 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국가 간 유치 경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각 산업별로 이미 정립되어 선호되는 분쟁해결제도가 있는 탓에, 후발국의 경우 법적 분쟁해결제도를 일종의 국제 거래 유치에 필수적인 인프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새로운 법적 분쟁해결제도가 기존의 확립된 관행을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사건을 담당할 전문가집단, 관련 규칙의 완비, 그리고 심판절차와 결과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축적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판결 결과의 공개도 보장되지 않는 사법시스템을 가진 국가의 사법부가 국제적 분쟁해결의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것에 외국의 기업들이 회의적인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법적 분쟁해결기구가 생겨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나, 이를 정치적 강압 외에는 선택의 동기가 없는 거래상대방에게 요구하는 방식은 당연히 환영받기 어렵다. 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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