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CEO포럼]황망한 죽음과 증폭되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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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CEO포럼]황망한 죽음과 증폭되는 공포
  • 경상일보
  • 승인 2022.07.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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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준석 법무법인PK 변호사 본사 차세대CEO아카데미3기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의 황망한 죽음은 끊이지 않고, 헤드쿼터에서 사업주들의 처벌 공포는 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사고는 산발할 것이고, 사법처리는 급증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사업주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않아 근로자 등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한 처벌을 받는다. 현재는 50인 이상 업체만 적용대상이고,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의하면 사고 비율도 전체 사고 대비 약 18%에 불과하지만, 2024년 1월부터는 5인 이상 업체도 적용되고, 사고 비율도 약 62%로 확대된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은 법 시행 전부터 대형 로펌들에 거액을 제공하면서 자문을 받아 사고 시 오너가 처벌받지 않거나 최소한의 처벌을 받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 왔다. 중대재해 1호로 알려진 모기업 사건의 경우 복수의 대형 로펌 선임비로 수십억원이 지출된 사실은 법조계의 공공연한 진실이다. 문제는 대형 로펌들이 사전예방이 아닌, 사업주가 처벌을 면하는 것을 중심으로 자문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이 법의 내용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전문인력 부족과 재정 등 현실적 문제로 대비를 위한 엄두도 못내고 있다. 울산·부산·경남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 관련 업무에 특화된 필자의 로펌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자문과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를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는 기업인들이 여전히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중소제조업체들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사항을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곳은 50.6%에 불과했다.

이 법은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심 조장으로 사고 예방을 좀 더 신경을 쓰도록 유도하는, 두려움을 이용한 전형적 악법이다. 법 규정 자체가 모호해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거나 비현실적인 조항이 많음에도 처벌이 능사라는 전제로 입법됐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법 적용을 받는 50인 이상 중소 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법 준수 가능 여부’를 묻는 질문에 53.7%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용 및 금리 인상, 고물가에 따른 임금비용 증가 등 중소기업들이 처한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에, 이 법 준수는 더욱 뒷전으로 미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로펌이나 고용노동부 등 소위 전문가들이 이 법의 수범자들로부터 해석에 대한 문의를 받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일단 예산을 확충하고 설비를 증설하며 인력을 늘리는 등 뭐든 최대한 하라’다. 전문가들도 법의 명확한 내용, 처벌을 면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도를 몰라서, ‘일단 하라’고 제안하는 것이 면피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정기관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법이 명확하지 않아 처벌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안전보건기준에 대해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현장 특유의 작업 여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현실적 제약으로 사업주나 근로자가 도저히 취하기 곤란한 가정적 예방 수단을 상정한 후, 사고 전에 그러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현실을 무시한 기준으로 오너들을 옭아매려 한다. 그 누구도 정확한 내용을 모르는 이 악법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현 정부는 지난달 16일 경영책임자의 의무 명확화 등을 위해 이르면 이번 달 이 법 시행령 개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법 시행 후 5개월이나 지났지만 반가운 소리다. 법 개정으로 법률 수요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전문가조차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악법은 고치는 게 마땅하다. 사고 후 대처보다 사고 예방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현장에 나가 실사하고 사업주들과 근로자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진심으로 소통해야 비로소 사고 예방에 실효성 있는 법으로 개정할 수 있다. 입법자가 법을 만든 이상,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어 그것을 법에 반영함으로써 더 이상의 황망한 죽음과 공포의 증폭을 막아야 할 것이다.

변준석 법무법인PK 변호사 본사 차세대CEO아카데미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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