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그냥 참 어여쁜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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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그냥 참 어여쁜 너에게
  • 경상일보
  • 승인 2022.12.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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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희선 화봉고 교사

안녕! 사랑하는 3학년~

수능이 끝나고 월드컵을 즐기며 제법 시끌벅적 지낼 것 같았는데 오히려 수능시험 전보다 더 조용한 교실. 이 고요함이 의젓함으로만 생각되지 않고, 어쩐지 조금 서글프다. 너희는 코로나로 입학식도 못하고 두 달 넘게 원격수업을 하고서야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3년 내내 짝지도 없이 친구들과 늘 저만치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아직도 서름하구나. 너희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모여 떠들고 같이 땀 흘려 운동하고 종이 치면 못내 아쉬워 허겁지겁 급하게 교실로 뛰어 들어가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했다. 수학여행, 체육대회, 축제도 맘껏 즐기지 못한 너희가 너무 애틋하다.

삭막하고 외로웠을 학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성실하고 예의 바른 행동으로 매 순간 감동을 주었다. 매일 아침 방송할 때마다 ‘사랑하는 3학년’이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는데. 말의 힘인지, 함께 한 시간의 힘인지 나는 정말 너희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열심히 뛰었지만 간발의 차로 지각한 너희를 야단치고 돌아서며 빨갛게 상기된 너희 얼굴이 너무 귀여워 피식 웃곤 했다. 후배들이 급식 새치기를 해도 아무 말 못 하고 멀뚱히 서 있는 너희들에게 바보 같다고 매섭게 다그쳐 놓고서 순한 너희들이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혼낼 일도 아닌데 야박하게 군 것 같아 새삼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온다.

너희는 그냥 참 어여뻤다. 그래서 너희와 관련된 일이라면 애가 쓰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들 보내고 나면 내년엔 저 어떻게 하죠?”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동료 선생님을 보며 이제 너희를 더 큰 세상으로 보내줄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꼰대 감성으로 느껴질까 조심스럽지만 새로운 출발을 앞둔 너희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길을 잃을 때 이정표가 되어주는 말을 해주고 싶구나.

사랑하는 3학년! 세상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단다. 그러니 누구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늘 질문하며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두려워 말고 뭐든지 도전하고 경험해보길 바란다. 실패해도 괜찮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며 너는 꾸준히 성장하게 될 테니! 헤맨 만큼 삶의 영역도 넓어지니 늦가을 억새씨처럼 표표히 날아가 너다운 삶을 가꿔가길 바란다. 때론 서툰 하루에 불안해하고 남과 비교하며 조바심도 들겠지만 겁내지 말고 기죽지 말아라. 요즘 너희들 유행어처럼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정신으로 꾸준히 즐기며 도전하자. 순간에 충실하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너만의 보폭과 속도로 가보자.

너희가 대학 신입생이 되는 내년에는 마스크 벗고 말간 얼굴로 벚꽃 흩날리는 캠퍼스를 누비길 바란다. 너희들의 빛나는 청춘을 축복하며 응원할게!

황희선 화봉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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