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노 교육감은 김해 금곡초등학교, 한림중학교, 부산 데레사 여자고등학교,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79년 울산 현대공업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며 울산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초임 교사 시절 만난 한 제자로 인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아끼던 제자가 손목이 잘리는 큰 산재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노동자에 대한 관심 등 사회운동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쉬는 시간에 학교 매점에서 일하면서 공부했던 제자를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자괴감에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제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부했다.
그의 교육운동은 1986년 한국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명의로 발표된 교육민주화선언 참여로 이어졌고, 이를 이유로 해직됐다. 해직 이후에는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단체 산하 노동문제상담소에서 간사로 일했고, 이후 현재의 남편인 천창수씨를 만나 1989년 1월에 결혼을 했다.
평범했던 수학교사가 노동운동가가 된 것이다. 전교조 울산지부 1·2대 지부장을 지낸 그는 해직 13년 만인 1999년 울산 명덕여중 교사로 복직했다.
그는 울산시 교육위원 출마를 위해 2002년 퇴직했고, 그해 교육위원으로 선출돼 2006년까지 역임했다. 이후 학교급식 울산연대 집행위원장, 장애인교육권연대 자문위원 등 교육·인권운동 등에 매진하며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울산시장 후보로, 2008년 총선에서 진보신당 동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울산시장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러 차례 낙선한 뒤 8년여간 ‘정중동’의 행보를 하던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후보로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며 4번째 선거에 출마했다. 보수교육감이 수장을 맡은 지난 20년 동안 울산 교육계가 처참하게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판단,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부정부패 척결, 교육복지 확대, 교육과정 혁신 등 교육의 큰 그림을 그리는 공약과 더불어 학생 치과 주치의 도입, 급식실·화장실 환경 개선, 학교 청소예산 증액 등 작지만 필요한 공약을 내걸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7명의 후보가 각축을 벌인 2018년 울산교육감 선거에서 울산 첫 진보·여성 교육감이 됐다.
노 교육감은 초선 임기 동안 전국 최하위권이었던 청렴도와 교육복지를 전국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강력한 부패·비리 근절책을 도입하고, 고교 전면 무상 급식, 신입생 교복비 지원, 초등학교 입학준비금 지원 등 교육복지를 확대했다.
노 교육감의 직무수행 지지도는 취임 초창기 하위권에서 서서히 반등해 지난해 2월에는 전국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러한 긍정평가 속 노 교육감은 지속 가능한 울산교육을 위해 재선에 도전해 올해 6·1 지방선거에서 보수와 진보 후보 간 맞대결 구도에서 당선됐다.
노 교육감은 아이들이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고 삶과 미래를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교육철학으로 삼았다.
그는 울산 여성 유권자연맹 ‘우수 교육위원상’, 제6회 전태일 노동상, 울산 경실련이 기억하는 시민상 등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1남 1녀의 자녀가 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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