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단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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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단어의 중요성
  • 경상일보
  • 승인 2022.12.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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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은 얼마 전 국가에서 시행한 1차 치매진료 적정성평가에서 1등급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실시한 최초 평가에 1등급을 받은게 기뻤지만 울산병원이 속한 지역인 남구에선 유일한 1등급이었기에 평소 열심히 해준 구성원들에게 더욱 고마웠다. 이 평가는 치매진료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병원의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치매에 대한 교육을 이수한 의사의 비율, 뇌영상검사 및 혈액검사 시행률, 기억력과 사고력을 보는 선별/척도검사 시행률이 평가기준이다. 하지만 기쁜 와중에도 계속 마음 한구석이 걸렸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치매’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이 단어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온지 꽤 됐는데 아직도 공식적으로 쓰인다는 걸 새삼 느낀 것이다.

치매가 정확히 뭘까? 우리 대부분은 경험적으로 그게 뭔지 알지만 치매가 딱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건 의외로 까다로운데, 굳이 말하면 인지능력 전체가 어떤 원인으로 일정 정도 이상으로 떨어지는 증후군들의 묶음에 가깝다. 보통 알츠하이머병으로 대표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뇌의 정보처리 능력이 느려지는 것과도 다르지만 그 여부를 판별하려면 한두가지 증상으로 명확히 지적하긴 힘들고 영상 및 대면검사 등을 통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치매의 어원에 쓰이는 한자는 어리석을 치(癡), 어리석을 매()로 결코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단어가 아니며, 어원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단어 특유의 느낌 때문에 대상자에게 그 단어를 쓰는게 과연 환자를 배려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환자가 그 병명을 진단받는 순간, 그리고 진단된 환자가 일상생활을 하며 그 병명을 듣는 순간 의도치 않게 마음의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일본의 경우 2004년부터 치매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인지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매우 적절하고 괜찮은 단어라고 생각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용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었다. 기억하기론 10년 이상 전부터 여기저기서 논의가 나왔었는데 아직 공식명칭에 변화가 없다는 건 의아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치매는 아니지만 병명 및 진료과 명칭 관련해 비슷한 취지의 변화들이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몇 개나 된다.

비뇨기과의 정확한 법적 명칭은 현재 ‘비뇨의학과’다. 원래 명칭인 비뇨기과에서 쓰이는 비뇨기라는 단어가 성(性)과 연관됐다는 인식을 주어 그런 질환이 아닌 사람들이 방문하기에 민망한 느낌을 주고 또 남성들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도 주어 여성 환자분들이 가기 꺼려질 수 있다는 취지에서 ‘비뇨의학과’가 공식명칭이 된지 오래다. 정신과 역시 마찬가지로, 정신과란 말 자체가 어떤 경우엔 사회적으로 약간의 부정적 인식이 박힌 채 쓰이고 있고 결국 찾는 환자에게도 부담이 된다고 하여 대략 10년 전부터 ‘정신건강의학과’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필자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그럴바엔 좀더 취지를 살려보자 하여 다른 환자분들이 같이 볼 수 있는 곳에 표기된 용어는 ‘마음센터’로 바꿔서 안내하고 있다.

산부인과의 경우 ‘여성의학과’로 바꾸자는 논의 및 법 발의가 십년 전부터 있었는데 아직 이뤄지고 있진 않다. 그렇게 바뀌는 명분이 적절한지를 떠나서 필자의 병원은 현재 ‘여성센터’라는 표기를 산부인과와 함께 쓰고 있다. 병명의 경우 예전에 ‘정신분열병(증)’이라는 병명이 2011년에 ‘조현병’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언급한 사례들은 각기 변화해야할 적절한 이유들이 있고 환자중심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장 이런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치매’라는 단어는 아직 공식명칭이 그대로다. 몇 달 전에 인지이상증으로 부르자는 법이 발의됐다는 것까진 확인했는데, 개인적으론 환자들에게 말씀드리기엔 그냥 ‘이상’이라는 단어를 빼고 인지증으로 부르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어 하나 바꾸는게 중요할까? 물론이다. 우리가 쓰는 단어는 우리 인식을 형성하며 그 변화는 많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음에 있을 2차 적정성 평가 역시 이번처럼 1등급을 받도록 노력하겠지만, 그때는 앞에 붙는 단어가 바뀌어 있었으면 하는게 개인적 바람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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