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53)]박시제중(博施濟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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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53)]박시제중(博施濟衆)
  • 경상일보
  • 승인 2023.01.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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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은 대개 널리 은혜를 베풀고 사람을 구제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세상에 힘든 사람은 없어지고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찰 것 같다. 내가 만난 정치인 중에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사람은 봤어도 세상을 해롭게 하겠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의사와 약사, 변호사 등의 법조인, 수많은 직종의 공무원, 교사, 사회복지 분야 종사자 등 그들은 세상을 위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나와 가까운 사람 중에 나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꼭 ‘너를 위하는 마음에서’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들 말만 듣노라면 나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저렇게 많으니 나는 그저 행복할 것도 같다.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세상은 몹시 추웠다. 내 주변도 추웠고 나라 사람들도 추웠고, 나라 밖 사람들도 추웠다. 우리나라 예산 중에서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복지 분야라고 하는데, 여전히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온통 세상을 위한다는 정치인들뿐인데도 세상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법과 정의를 외치는 법조인들뿐인데도 사람들은 그 법의 적용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제네바 선언을 낭독하지만,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없지 않다. 학생을 위한다는 선생은 많은데, 선생에 대한 불신 또한 많은 게 현실이다.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성직자는 많은데, 세상에는 종교가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사람이 종교를 구해야 하는 시대라는 말이 많다. 세상에는 사람을 위한다는 사람도 많고, 고통받는 사람도 많다.

주희와 여조겸이 지은 성리학 입문서인 <근사록>을 보면, ‘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는 말이 나온다. ‘은혜를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해석이 <논어>에 나온다. 공자는 남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과 다름이 없으므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 또한 자기에게 베푸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남을 위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말은 과연 나의 진심인가? 남을 위한다는 말, 남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말,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진실로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하는 것이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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