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울산의 그랜드 플랜(grand plan)을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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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칼럼]울산의 그랜드 플랜(grand plan)을 설계하자
  • 경상일보
  • 승인 2023.01.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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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새해를 맞이하여 울산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조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 일자리 축소, 세계적인 경제불황 등 올 한 해도 울산의 상황은 예년에 비해 훨씬 더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울산시는 2023년 시정과제를 발표했다. 시의 각 부서에서 추천한 것을 대상으로 내부적인 절차를 거쳐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10대 과제는 신임 시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제시된 신년과제라는 점에서, 과제의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몇 가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시장 교체 이후 울산의 시정방향은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이 중단되었으며, 부유식 해상풍력은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린벨트 해제가 핵심의제로 등장했다. 불과 4년 사이에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초래됐다. 모두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위한 정책들이므로 이런 정책변화(policy change)가 앞으로 울산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정책변동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가급적 사회적 매몰비용(sunk cost)을 최소화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기존의 정책이 뒤집어지면서 새로운 정책들이 등장한다. 이전에 투입되었던 자원이나 역량들이 한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민주주의의 비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울산이라는 한정된 지역 수준에서 이토록 획기적인 정책변화가 등장할 이유는 그렇게 많지 않다. 돌이켜 보면 정책변화는 선거공약을 토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고려 없이 선거 승리를 위해 동원되었던 즉흥적인 정책들이 공약의 이름을 달고 주요 정책화했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울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그랜드 플랜(grand plan)을 작성할 것을 제안한다. 그랜드 플랜을 통해 적어도 10년 정도 울산이 추구해야 할 주요 정책어젠다를 발굴하고 재원 동원계획과 주요 참여자들의 역할 등을 잘 정립해 놓으면, 정책의 합리성이 제고될 뿐만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교체되더라도 과도한 정책변동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그랜드 플랜을 작성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각 주체들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고, 현실진단의 기준은 물론 미래예측의 내용들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랜드 플랜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중립적인 기구를 구성해 울산의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울산의 좌·우 정파를 아우르고, 기업, 노조, 시민단체, 언론, 관료, 전문가 등이 참여해 분야별로 울산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대안을 탐색하고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울산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각종 사회적 지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인구, 소득, 실질 경제성장률, 고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최악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울산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울산시 관료들이 작성한 10대 과제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랜드 플랜 설계가 어렵고, 시간과 비용도 많이 들고, 공연히 긁어 부스럼 격의 갈등도 유발할 수 있겠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보다 차분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고 했다. 이를 빨리 간파하고 순발력 있게 적응해 나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우리는 여전히 ‘산업수도’와 같은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랜드 플랜 설계를 통해 울산에 도래한 미래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비하는 동시에 울산시민들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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