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서예 정신문화의 위기탈출과 새로운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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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서예 정신문화의 위기탈출과 새로운 도약
  • 경상일보
  • 승인 2023.01.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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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곤 삼봉서예연구소 소장

그동안 한국문화예술의 뿌리인 서예는 선비정신의 발로이자 성찰의 도구였다. 문자를 이용해 상호 뜻과 말을 전달하고 기록해 수천 년의 변천을 거듭해 오며 발전해 왔다. 또 전통문화 유산으로 정신수양, 조형미를 겸한 종합예술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현대의 서예문화는 시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기성 세대와 신세대간의 수혈이 막혀버린 위기의 시대에 봉착했다.

위기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일종의 시련이며, 때론 새로운 발전과 더 큰 도약의 길을 열어주는 반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위기는 곧 기회란 말도 이런 뜻에서 일컬어지는 것이라고 하겠다. 위기 중의 위기라면, 스스로의 원인에 의한 위기와 타인에 의한 위기가 동시에 겹쳐 찾아오는 경우일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누구도 앞장서는 사람 없다면 위기는 그대로 깊은 절망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서단과 서예정신 문화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위기 중의 위기다. 과거로부터 돌이켜 보면 우리 한국의 서예가들도 한 때는 호황을 누린 적이 있었다. 서예가들은 그 호황이 오래도록 이어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는 안일 속에서 자라고 호황 속에서 찾아오는 법이다. 서예 위기는 21세기가 다가오면서 뚜렷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입시 위주의 편중된 교육으로 미술과 서예수업은 시수가 점점 줄어들고 컴퓨터와 첨단의 미래 먹거리 속에 서예문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갔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은 사라지고 서예정신의 모태는 희미해졌다. 그러다보니 서예의 정신문화와 가치는 더욱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크고 급박한 위기라 할지라도 많은 양식 있는 서예 명사들의 지혜와 힘과 노력이 하나로 모아진다면 위기탈출의 길은 모색되고 발견되는 법이다. 서예 정신문화의 위기 탈출 및 재도약을 위한 길을 제시해 본다.

첫째, 서예 정신문화를 부흥해 서예문화가 시대의 문화흐름과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문화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문자, 특히 30자 이내의 감각적인 단문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복잡하고 지루하고 까다로운 긴 문장의 서예는 읽기도 어려워 감상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평소 감상하기 쉽고 읽기 쉬운 서예, 진정성이 담긴 서예, 간결하고 부담이 없고 고루하지 않는 참신한 서예, 스토리가 있고 감동을 주는 서예, 다양한 문자꼴과 창작으로 이어진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서예 등을 강조해왔다. 만족감을 주는 서예란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야만 가능한 것이다.

둘째, 서예 언어 문화의 세계화, 즉 모든 문자 폰트의 서예화를 이뤄야 한다. 붓, 먹, 종이로 이루어지는 한, 중, 일 중심의 서예를 뛰어 넘어 세계의 모든 문자를 예술화하는 ‘서예의 세계화 운동’을 통해 서예라는 이름의 문장예술을 보편화시키자는 것이다. 우리의 서예를 제아무리 외국에서 전시하고 소개를 한다 해도 한글, 한자의 의미를 모르는 동양식 서예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 없다고 생각된다. 회화, 음악, 건축과 같이 서예문자를 예술화하는 것이 서예위기 탈출과 재도약의 새로운 길이다.

셋째, 서예문화의 이론적 체계와 다양한 학문과의 교감·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서예는 단순한 기술, 기능의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의 천착과 소통을 통해 배양하고 축적된 심성적, 지성적 교양의 표현이다. 서예는 행위와 정신이 깃든 인문학인 것이다. 작가의 학문적 사유와 교감·소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깊이와 폭이 심화되고 그 조형성 또한 더욱 다양화될 수 있다.

침체와 위기의 시간이 길수록 퇴화의 가능성은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 필자가 제시하고 있는 길을 포함해,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서예문화의 전반적인 침체와 퇴화를 막고 재도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자. 새해가 밝았다. 마음 속에 ‘검은 토끼’를 안고 새해에는 진정으로 서예문화의 꽃을 피워 보도록 하자.

김석곤 삼봉서예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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