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한국어로 손을 잡고 영어와 아랍어를 서로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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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한국어로 손을 잡고 영어와 아랍어를 서로 배워보자
  • 경상일보
  • 승인 2023.01.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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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 대송고 교사

지난해 9월, 나뭇잎이 색다른 옷을 입기 시작한 가을의 시작에, 나에게도 특별하고 색다른 경험이 찾아왔다. 15년이 넘도록 교과서 영어와 수능 영어 수업만 했던 내가 갑자기 한 번도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기초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학생 수는 단 2명. 다름 아닌 우리 학교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영어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평소 방과후수업 중에 실시했던 기초영어 수업과는 또 다른 수업이어야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수업을 하겠다고 선택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한국어 학습도 거의 처음부터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영어 문법과 영어 단어의 뜻과 철자를 외우게 하는 수업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나는 통합영어학습법 울산교육연구회의 고문 김성길 선생님(제4세대 통합영어학습법 저자)께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영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어떻게 영어를 습득하고 학습할 수 있을지를 정리하신 ‘Family English’을 말씀해주셨고, 나는 6월에 공부를 시작해서 3개월 정도 공부한 후, 2학기가 시작되고 곧 아프가니스탄 여학생 2명과 오붓한 기초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 한국어를 편하게 구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영어를 학습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이 한국어 학습에 정말 열정적이어서 의사소통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높은 집중력으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온종일 수업을 듣고 난 저녁 방과후수업 시간. 영어를 읽고 정확하게 발음하며 교사와 함께 해야 하는 수업이라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물어보면, 언제나 괜찮다고 웃으며 대답하며 더 열심히 하려는 모습에 내가 더 힘이 났다. 여학생들은 각자 의사와 간호사가 되겠다는 예쁜 꿈을 가지고 한국 생활과 문화에 대한 적응, 새롭고 낯선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에 무척 열심이다. 스스로 해야 하는 많은 공부도 성실히 해내며 하루하루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는 모습이 나에게 더 큰 감동이 되었다. 수업을 한 몇 개월 동안 내가 학생들을 보며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우고 성찰하기도 했다.

지금은 겨울방학 기간이지만 우리는 줌(Zoom)에서 만나 학기 중의 영어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영어 문장의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내가 영어로 문장을 읽고 한국어로 뜻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아랍어로 문장의 뜻을 다시 말해본다. 학생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아랍어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따라 하면, 학생들은 반가워하고 웃으며 정확한 발음을 나에게 알려준다. 수업을 시작할 때는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학생들이 졸업할 내년에 학생들의 향상될 영어 실력과 나의 아랍어 실력이 벌써 기대된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어로 손을 잡고 영어와 아랍어를 함께 배우는 행복한 배움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김건희 대송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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