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CEO포럼]응급실 뺑뺑이, 임시방편 조치보다 근본적 이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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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CEO포럼]응급실 뺑뺑이, 임시방편 조치보다 근본적 이해 필요
  • 경상일보
  • 승인 2023.05.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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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민 율제요양병원 대표원장

‘응급실 뺑뺑이’. 이제는 누구나 뜻을 떠올릴 수 있는 단어다. 위급한 환자가 구급차를 통해 응급실을 방문하고자 했으나 받아주는 곳이 없어 전전하다 악화되거나 사망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이토록 의료기술과 인프라가 발달한 시대에, 병원 문턱이 가장 낮다고 얘기하는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심해지고 있을까. 필자는 누군가의 잘못이거나, 흔히 대두되는 의료 인력의 부족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높은 의료수준, 시설에 비해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의료수가, 싸고 보장이 많이 되는 의료보험으로 무장한 나라다. 환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도리어 응급실에 과부하를 일으켜, 중증환자의 진료 기회를 우리 스스로 없애고 있다. 시간외 의료서비스(after-hours care, AHC)를 흔히 응급실에서 받는 ‘응급진료’와 동일시하기에 상황은 좋아질 수 없다.

먼저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 인력들은 급여를 받는 노동자일 뿐 병원 운영진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물적, 인적 자원으로 환자들을 진료해야 한다. 특정 중증도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뿐 아니라 동시에 여러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현장 의료진들이 결정해야한다. 애초에 119 등의 응급의료체계 시스템상 허위로 환자를 거부할 수는 없기에, 환자로서는 답답한 결과이지만 진료 불가라고 하는 응급실들의 입장은 사실일 것이다. 병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명의 환자라도 더 진료하는 것이 운영에 도움이 되고, 환자 거부가 없어야 병원 이미지가 실추되는 일이 없기에 무조건 환자를 수용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 의료진이 병원에 요구하는 물적, 인적 자원들을 무한정 제공할 수는 없기에 병원 또한 적정한 한계를 정해 운영을 할 것이다. 경증환자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중증환자의 수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무작정 정책을 통해 응급실의 환자 수용만 강제한다면 결국 손해는 다시 환자가 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10인분의 재료를 준비한, 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에서 법으로 강제로 20명의 손님을 일시에 받게 한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는 제시간에 식사를 못할 것이고, 누군가는 굶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법의 잘못인가 혹은 식당의 잘못인가. 피해는 고스란히 손님이 본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자면, 일본에는 우리나라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역할을 하는 구명구급센터가 있다. 이곳은 결코 경증의 환자가 이송되는 일이 없다. 하루에 고작 몇 명의 환자만 수용하지만, 응급한 환자의 초기 진료부터 수술, 입원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중증 환자는 무조건 수용이 가능하기에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말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권역외상센터’와 비슷하다. 경증환자에 대해서는 의원급 기관에서 ‘야간진료’를 지역 내 당번 의사제 등의 방법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렇게 ‘응급진료’와 ‘야간진료’를 구분하고 있다.

미국 또한 개인 주치의 또는 긴급진료클리닉 등에서 AHC를 제공한다. 일반 응급실에서도 AHC를 제공하지만 높은 의료수가로 수요는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 미국 또한 우리나라와 개념은 다르다. 의료복지 국가로 잘 알려진 캐나다와 영국, 유럽 국가들에서는 기본적으로 AHC를 응급실에서 대면할 기회가 많지 않다. 주로 전화로 먼저 의료진과 비대면 문진을 하지만 그 역할마저 대부분 간호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응급진료와 AHC의 개념을 나눠야 한다. AHC의 개념을 확대하고 이에 맞는 정책적 지원이 시작돼야 할 때다. 이전보다 발전한 권역외상센터의 사례처럼, 권역응급센터의 역할을 지켜나가야 한다. 경증환자 진료의 분리를 위해 그간 여러 ‘공공 야간 진료’의 조례안이 발표되고 연구되었으나 아직 큰 호응을 얻거나 활발히 시행되는 지자체는 없는 듯하다. 정책의 제목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 주체에 대한 관리가 아닐까. ‘응급실 뺑뺑이’가 많은 문제가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지금이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한 번 더 도약할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울산시 또한 적절한 방향으로 나아가 더 이상 ‘응급실 뺑뺑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민 율제요양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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