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 칼럼]‘레트로’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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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 칼럼]‘레트로’ 울산
  • 경상일보
  • 승인 2023.06.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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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트로(retro) 감성이 최근 트렌드 중의 하나다. 석탄난로가 설치된 교실 모습으로 꾸민 식당이 등장하고, 예전 스타일의 의상이 다시 유행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레트로 감성 마케팅이다. 울산시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인가. 요즘 울산시는 레트로가 충만하다.

30여년 만에 공업축제가 부활했다. 산업수도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AI로 상징되는 첨단 산업시대에, 요즘 잘 사용하지도 않는 철 지난 용어인 ‘공업’이라는 단어를 붙여 축제를 개최하는 사고방식이 놀랍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울산이 예전부터 공업도시라는 것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결과 환경오염도 심하고 노동운동도 활발한 지역이라는 것이 울산의 과거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동안 부단한 노력을 통해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는 등 산업도시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친환경 생태도시로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공업’을 내세우는 축제라니 도대체 울산시가 만들려고 하는 울산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공업도시가 되어야 투자유치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생태·문화도시에는 기업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또 최근 추진되고 있는 기업인 동상 설치도 참신한 발상으로 보기 힘들다. 울산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선양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250억이라는 예산을 투입해서 거대 동상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특정인의 거대 동상은 전통적으로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에서 볼 수 있는 상징물의 성격이 강하다. 민주화 된 서구 문명국의 어디를 가도 소박하고 정감이 가는 소규모의 동상은 수 없이 많지만 50m가 넘는 거대 동상은 쉽게 보기 힘들다. 모르긴 해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인들이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과 후손들도 굳이 이런 거창한 형태의 기념물을 원할 것 같지는 않다. 울산 대공원이나 생전에 활동했던 공간에 소규모로 기념 동상을 세우거나, 아니면 기업인들의 업적을 학문적으로 재조명하는 학술행사 정도면 족하지 않겠는가. 또는 기업과 협력해 아담한 규모로 ‘자동차 박물관’ 같은 것을 세우는 것은 어떤가.

울산시의 레트로 경향은 인사에서도 나타난다. 이른바 ‘올드보이’의 임용이다. 부시장을 비롯해 시장이 정무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에 ‘전직(前職)’들이 대거 등장했다. 주지하다시피 같은 일도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에는 과거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고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즐비한 울산에는 전문성과 글로벌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적지 않지만 이들은 공직에서 거의 배제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울산시의 과거지향 경향은 인사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지방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한발 앞서 나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시대적 흐름에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다. ‘공업’ 축제를 열고, 거대 동상을 세우는 레트로적 사고는 이제 지양했으면 한다. 시민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소수 정책결정자들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주장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갑자기 주요 정책으로 등장하는 것도 자제되어야 한다.

곧 민선 8기가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이제 울산의 현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울산의 미래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의제가 무엇인지 분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의제들을 정립해 울산의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보다는 울산의 미래를 보장할 비전과 정책을 원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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