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생각]먹거리 기본권 보장하는 커뮤니티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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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생각]먹거리 기본권 보장하는 커뮤니티 키친
  • 경상일보
  • 승인 2023.06.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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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진 인보관 마을복지센터 소장

울주군 서생면 진하마을의 한 경로당. 오후 5시가 넘어서자 경로회 회원들이 식사 준비를 한다. 메뉴는 라면과 찬밥. 마트가 멀고 차가 없으니 장보기도 어렵고, 나이 들어 식사 준비에 설거지 과정이 힘에 부쳐 자주 라면으로 때운다. 몸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경로당에 함께 모여 라면이라도 먹지만 몸도 성치 않은 노인들은 끼니마다 뭘 먹고 버티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처지에 놓인 노인들에게 적절한 영양공급을 위한 마을식당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주민들이 있지만 주방으로 사용할 공간이 마땅찮다. 이 마을에만 혼자 사는 노인이 100여명에 이른다. 해법이 없을까? 부산 진구에는 노인 식단의 전문적인 관리와 공급을 위해 운영하는 커뮤니티 키친(마을부엌)이 있다. 이 공간을 ‘온마을사랑채’라고 부른다.

커뮤니티 키친은 소득과 사회적 양극화에 대응하면서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고,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소외현상을 극복하는 한편, 먹거리를 통한 공동체 문화를 함께 만드는 시도를 말한다. 먹거리 기본권은 경제적 형편과 사회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굶주림을 넘어 양적으로, 질적으로 충분한 먹거리를 보장받는 권리다. 먹거리 문제는 개인의 선택보다 사회적 환경과 구조에 지배받는다. 사실상 국가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온마을사랑채의 경우 개개인의 건강 상태와 질병, 기호와 습관을 고려해서 맞춤형 식단을 제공한다. 식단에 따라 하루 한 끼를 배달해준다. 방문식사도 가능하고 포장해서 가져갈 수도 있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은 월 7만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15만5000원은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 바우처로 지원한다. ‘일반 이용자’는 5000~9000원을 부담하면 된다. 울산의 경우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을 울산광역시복지가족진흥사회서비스원에서 운영한다.

온마을사랑채 전달체계 일선에는 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이곳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이 돌봄대상 노인을 찾아 연계한다. 선정된 주민은 마을건강센터에서 마을간호사와 온마을사랑채 영양사를 만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식사에 관한 기초 상담을 받는다.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맞춤형 식사를 제공한다. 이후 식사 배송자 의견을 수집해 영양사에게 전달하는 체계다.

커뮤니티 키친은 학교 다녀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른바 ‘어린이식당’이다. 일본을 비롯해서 부산 동구와 서울 관악구·노원구·마포구 등 몇 곳에서 운영 중이다. 이제 우리도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이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서, 맞벌이로 인해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국가가 개인과 가족, 지역공동체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요구에 응답할 때다.

이승진 인보관 마을복지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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