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육 현장에는 학습 속도가 다소 느린 아이들, 즉 ‘느린 학습자’(slow learner) 또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들을 점점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느린 학습자란 표준화된 지능검사 결과가 지능 지수(IQ) 전체 평균인 100점을 기준으로 IQ 71점 이상 84점 이하에 해당하는 학습자를 말한다. 지능지수가 70점 이하인 지적 장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평균보다 낮은 지능을 가져 그 경계선에 있는 것이다.
경계선 지능인은 전체 국민의 약 13.6%로 추정되며, 제도와 사회적 시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평균적인 학습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워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학습 부진은 자존감 저하와 사회성 결핍으로 이어지고, 결국 학업 중도 포기와 사회 적응의 어려움까지 연결될 수 있다.
지난해 울산시교육청 산하 기초학력지원센터는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 127명에게 중재 지원(치료)을 제공했다. 이는 기초학력 미도달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큰 과제가 남아있다. 프로그램 신청이 학부모 동의를 받아 운영되다 보니,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낙인 우려로 신청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사회적 인식 부족과 편견은 제도적 지원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청, 학부모를 포함한 지역사회, 지자체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 및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청은 교사를 대상으로 한 특수교육 및 기초학력 지도 연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느린 학습자 혹은 경계선 지능 아이에 대한 이해와 지도 방법의 전문성이 부족한 채로 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교사들이 이에 대한 이해 없이 학급을 운영할 경우, 해당 학생은 더욱 소외되고 방임될 가능성이 높다. 교사 자격 연수 및 신규연수에 이를 정례화하고, 실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느린 학습자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이 높아질수록 다양한 학습 수준을 포용하는 수업이 가능해진다.
둘째, 학부모와 교육청과의 연계 강화가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의 교육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교사이다. 따라서 교육청과 학교는 느린 학습자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양육 코칭, 또래 부모 모임 운영 등 지속 가능한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아이의 자존감 회복과 사회 적응을 돕는 핵심이 된다.
셋째, 지자체는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한 공공 캠페인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느린 학습자와 경계선 지능 아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에서부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사례를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경계선 지능 학생과 느린 학습자에 대해 낙인이 아닌 ‘지원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시선 전환이 필요하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은 단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학습이 빠른 아이뿐만 아니라, 조금 느리지만 분명히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도 그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교육청은 제도와 지원을, 교사는 전문성과 포용의 자세를, 학부모와 시민은 열린 마음과 배려를, 지자체는 인식 개선과 지역 연계를 지원할 때, 우리 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조금 느린 학습자의 속도를 인정하고, 그 속도에 맞춘 도움을 제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평등 교육이 실현된다.
모든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학교, 그 아이의 손을 놓지 않는 교사,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방향이다. 필자 또한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이러한 제안들이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속도대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부모 역시 두려움보다 희망을 품게 된다. 아이를 이해해 주는 교사 한 명, 문을 두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게 하는 제도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부모의 입장에서 절실히 느낀다.
안대룡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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