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의 도시경관이 혁신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첨단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미디어 파사드가 산업도시 울산의 야경을 문화예술의 장으로 변모시키며,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아산로 현대자동차 출입구의 LED 사이니지(Signage)는 염포산터널과 아산로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역동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거대한 자동차 생산시설과 운반선들이 자아내던 차갑고 건조한 분위기는 LED 사이니지를 통해 생동감 넘치고 미래지향적인 도시경관으로 탈바꿈했다.
석유화학단지의 SK Complex 정문에 설치된 지름 6m 규모의 ‘매직 스피어’는 LED 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구형(球形) LED 미디어조형물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근로자들에게 예술적 감흥을 제공하며, 삭막하기만 했던 산업단지의 야경을 화려한 빛의 향연으로 변모시켰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물이나 구조물의 입면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이미지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과 LED 사이니지로 구분된다. 프로젝션 맵핑은 고해상도 프로젝터를 활용해 건축물 외벽에 영상을 투사하는 기법이다. 세계적인 빛 축제로 명성을 얻은 프랑스 리옹이 대표적 사례다. 중세의 웅장함을 간직한 성당과 역사적 건축물들이 첨단 영상기술을 만나 환상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매년 12월, 리옹의 거리는 빛의 예술로 가득 차며,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 황홀한 광경을 경험하기 위해 모여든다. 이 방식은 대규모 이미지 구현이 쉽고 초기 투자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주변 조도의 영향을 받아 주간에는 활용이 제한되고, 기상 여건에 취약하며, 램프 수명 문제로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프로젝션 맵핑은 주로 한정된 기간동안 진행되는 이벤트에 활용된다.
반면 LED 사이니지는 수만 개의 LED 모듈을 조합한 대형 디스플레이를 건축물 외부에 설치하는 방식이다. 자체 발광하는 LED의 특성상 주간에도 선명한 영상 구현이 가능하고, 전천후 운영이 가능하며, 에너지 효율 또한 탁월하다. 일본 도쿄의 시부야 교차로에 설치된 3D LED 사이니지는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다양한 SNS를 통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LED 사이니지가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매년 연말에 새로운 주제로 선보이는 화려한 영상쇼는 시민들의 발길을 이끌며,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울산시청에도 3D LED 사이니지가 설치될 예정이다. 도시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독창적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츠 전략과 3D 아나몰픽(Anamorphic) 기법을 활용한 환상적인 영상을 제공해서 단순한 광고매체를 넘어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울산의 상징인 귀신고래가 건물을 뚫고 나오는 듯한 역동적인 영상이나, 태화강 물결과 울산 앞 바다의 거대한 파도가 건물 벽면을 타고 흐르는 듯한 차별화된 연출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은 일상생활의 터전을 넘어 문화예술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의 진정한 가치는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고양하고 예술 체험의 장을 확장하는 데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이 지향하는 ‘디지털아트 뮤지엄’의 비전과 연계한다면, 미술관의 컬렉션과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시민들의 일상에서 살아 숨쉬고, 공유되는 ‘열린 갤러리’로 확장될 수 있다.
최근 주목받는 AI 기반 콘텐츠 생성 기술과 결합한다면 시민들이 능동적 참여 할 수 있는 소통의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는 신속한 정보 전달의 채널로, 평상시에는 실시간 도시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 시티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다.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표현되는 대왕암공원의 자연적 아름다움, 반구대 암각화의 역사적 가치 그리고 산업도시의 생동감과 역동성을 담은 영상 콘텐츠는 울산만의 차별화된 도시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기술과 예술의 창조적 융합은 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첨단 LED 사이니지를 적용한 미디어 파사드가 그려낼 울산의 새로운 도시경관이 시민 모두의 자긍심이 되고,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