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정확히 말하면 해야 할 일이 끝났을 때 우리는 이 말을 외치며 가뿐히 문을 나선다. 쓰디쓴 일을 말로 털어내며 뿌듯함을 삼킨다. 타인의 노고를 인정하고, 치하하며 고마움을 표현한다. 이렇듯 지난한 것들이 쌓여갈 때 요즘 말로 ‘갓생’을 산다고 표현한다.
이 기준이 되는 노력이란 무엇일까? 주변에 물어본 결과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물리적인 시간과 화학적인 감정. 늦은 저녁, 눈 떠보니 훌쩍 넘어간 초침을 바라보며 뒤늦게 찌뿌둥한 어깨와 허리를 편 적이 있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만큼 간단 무결한 지표가 있을까. 그러나 수직선상에 표시되지 않는 가치도 있는 법. 대입 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보며 대신 해줄 수 없기에 안쓰러운 눈빛과 숨죽인 기다림 또한 일종의 노력이다.
그렇다면 생성형 AI를 써서 짧은 시간에 큰 부담 없이 과제를 완성했다고 가정하자. 이것도 고생이나 수고의 수식어를 허용할 수 있는 ‘나’의 노력일까? 질문에 따라 활용 수준과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게 분명한 만큼, 노력과 능력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매월 뭉툭한 초고를 깎고 다듬은 글 한 편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끼는 요즘이다. 급한 나머지 AI로 몇 분 만에 만든 글을 기고한다면, 지금처럼 소속과 이름을 붙여도 될까.
책임과 처우 사이 미묘한 간극은 교실에서도 나타난다. 자료 조사를 할 때 단골 질문은 바로, “챗GPT 써도 되나요?”. 대부분 생성형 AI는 나이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아직은 필사 아닌 조사를 하도록 지도한다.
학창 시절 꿈 많은 청소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어른들이 강조하던 한 마디가 있다. 바로 ‘공부는 엉덩이 힘’. 요즘은 공책, 시계와 같은 문구에 ‘스마트’가 붙으며 ‘공부는 아이템빨’인 시대가 왔다. 문제집을 드는 대신 e북을 내려받고, 교무실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대신 인공지능이 질문을 기다린다. 부수적인 시간을 아껴 더욱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순공’ 시간을 늘리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 오기 전이면 주문처럼 외는 구절. “사람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사용해선 안 된다.”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나온 소설가 김영하의 말이다. 하얗게 소진하지 않도록 필요할 때 쓰기 위한 여분을 남겨둬야 한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기. 다가올 미래에 노력과 능력을 구분하는 건 중요치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힘이다. 할 일의 늪에서 나올 70%와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 30%의 체력. 기술을 빌려 고유한 힘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미래가 반가운 이유는 우리를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으레 반복되는 인사말은 항상 쓸 고(苦)를 품는다. 사람이 부단히 애쓰는 단계를 넘어 천연의 색을 띠는 쓰임새를 찾기를.
배상아 복산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