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이유로든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문 안팎으로 휠체어를 탄 분의 손이 닿을만한 높이에 전자버튼이 있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병원 화장실 근처를 지나가던 중 웅성거림과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었다. 보호자분께서 환자분을 휠체어에 태워서 장애인 화장실에까지 데려다주신 후 문을 닫아드렸는데 내부에 계신 환자분께선 고령이다보니 여는 버튼을 못 찾으시고, 또 귀가 어두우셔서 바깥에 계신 보호자분과 의사소통도 힘든데다 보호자분은 외부에서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라 벌어진 상황이었다. 버튼은 흔히 달리는 위치인 문 기준 앞뒤에 달려있었고 강조해서 표시도 해놓았는데 어쨌든 당시 환자분 상태는 그걸 정확히 누르실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고 보호자분께선 같이 들어가 용변처리를 해주시진 않으셨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 바깥에서 열어야 하는데, 필자의 병원에서는 ‘열림 버튼을 눌러 안내멘트가 9번이 나오면’ 비상시 오픈이 된다고 방법을 버튼 위에 써놓았다. 그런데 이걸 시연하는 걸 한번이라도 보면 간단히 할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 안내문으로 ‘9번 멘트가 나오도록 누르’라는게 읽고 따라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해결하긴 했지만, 마음에 남아 이후 장애인용 버튼 비상개방 기능이 이거 밖에 없는가 찾아보니 10초간 계속 누르면 강제오픈 되는 타입이 있다는 걸 알았고, 놀랍게도 그런 제품이 요새는 잘 나오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시중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밖에서 오픈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곳도 거의 없다.
병원은 움직임이 힘든 환자부터 응급상황에 빠르게 뛰어다녀야 하는 의료진까지 모두가 사용해야 하기에 흔히 사용자 모두를 위해야 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남녀노소가 다 편해야 한다는 유니버셜 디자인이 필요한 대표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사용자 각각의 편의가 때로 대립되는 장소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론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병원에서 환자가 쓰는 문들에는 특별한 경우인 방화문 정도를 제외하면 둥그런 손잡이가 없다. 이유는 혹시라도 깁스 등으로 손을 못 쓰는 환자를 위해서이다. 그분들이 팔꿈치나 다른 부위를 이용해 문을 열 수 있도록 그에 맞는 형태의 문들이 보통 사용된다. 방향을 표시하는 안내 사인의 경우 시력이 나쁜 고령자분들을 고려해 크기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분들을 위한 점자블록이나 점자 사인도 병원에선 좀더 철저히 설치하기도 한다. 의료진을 위한 공간과 환자를 위한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어 운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만큼 편의상 입장차도 큰 편이다. 대형병원들의 경우 특정 검사들을 위해 환자가 많이, 또 자주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채혈을 하러 이리 갔다가 엑스레이를 찍으러 또 저 멀리 가야 하는 식이다. 사실 환자 입장에서는 비슷하게 처방이 나는 검사들은 가급적 동선상 한곳에 모여있으면 편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원들은 그를 고려하기도 하지만 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아예 부서에 따라 영상검사와 진단검사 파트 자체를 나눠놓았다.
필자의 병원은 증축해서 규모를 키우는 단계에서도 이전에 하던 방식이 환자 편의상 좋다고 생각하여 간단한 엑스레이 등의 경우 진단검사 파트 옆에 따로 한 대씩을 더 배치하기도 했다. 앞서 예로 든 점자블록, 큰 사인 같은 경우도 입장차가 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 분들 입장에서는 매우 필요하지만, 뇌경색 등으로 발걸음이 힘들어 지팡이를 짚고 발을 끌며 다닐 수 밖에 없는 환자분들에겐 불편하다. 예전에는 점자블록이 돌출된게 아니라 들어가는 형식도 나왔지만 이제는 법적인 문제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크기가 큰 사인은 고령자분들이 보기 유리하지만 동시에 큰 사인들이 한공간에 너무 많이 배치가 되면 안그래도 아픈 환자분들의 입장에선 정신이 사납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서 말했던 장애인 화장실 버튼도 마찬가지다. 사실, 병원이 아닌 일반적인 회사 건물에서는 밖에서 비상시 강제개방기능이 크게 필요가 없기에 수요가 없고 그를 편리하게 하는 기능이 점차 생산이 안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각자 입장에 따라 미묘하게 사용편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란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