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동네 구의원의 새로운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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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동네 구의원의 새로운 각오
  • 경상일보
  • 승인 2025.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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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영진 울산중구의회 의원

기초의원은 동네 민원을 해결하는 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대민 기회가 잦고 그럴 때마다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동안 고맙고, 안타깝고 때로는 황당한, 여러 가지 경험을 마주하며 자의 반 타의 반 민원창구 역할을 해온 셈이다. 어느 중년 부인은 이미 매도한 부동산 가치가 너무 평가절하됐다고 계약을 취소시킬 수 있겠느냐 했다. 어느 할머니는 드럼 연습을 하고 싶으니 외딴 그린벨트 구역에 빈집 하나 구해달라고 했다. 한 아저씨는 중구의 고도 제한 해결책으로 울산공항을 무룡산 너머 강동 해안으로 옮기라고 제안해 왔다. 해결은 불가능했다. 민원이 아니라 사기와 편취 피해가 의심되는 사연도 있었다.

경찰서나 변호사 사무소를 찾아가야 한다고 했더니, 오죽 답답했으면 의원한테 왔겠냐며 실망스러워했다. 하나의 안건을 두고 주민들 입장이 엇갈릴 때도 있었다. 가까운 이웃들이 양편으로 갈라서 감정 다툼을 벌이니 더욱 난감했다. 주정차 단속이 대표적이다. 아파트단지 입주민들은 아이들 등하굣길이 안전하지 못하다며 단속 횟수를 늘리라고 한다. 반면 단지 앞 상가에서는 시도 때도 없는 단속에 장사를 망친다며 무조건 줄이란다. 이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렇다고 곤혹스러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요양보호사들 조차 방문을 꺼리던 어느 고령자의 집을 수리하고 집 안에 양변기를 들인 일, 저류지를 주차장으로 활용하자는 동네 숙원이 수년 만에 행정에 반영된 일은 울림이 컸고 기대도 크다.

전봇대 넝쿨 더미를 전지하여 변압기 손상을 사전에 방지한 일, 제 기능 못하는 램프 구간 반사경을 교체한 일, 맨홀 주변 파임 현상을 밤새 보수하여 차량 파손을 막은 일, 파손된 데크와 보도블록을 민원 접수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뚝딱 보수한 일도 떠오른다.

민원 처리 법률에 따르면 민원은 크게 일반민원과 고충민원으로 구분된다. 일반민원은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증명서를 신청하는 법정 민원, 설명이나 해석을 요구하는 질의 민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건의 민원, 앞서 밝힌 사례처럼 일상생활 불편을 개선해달라는 기타 민원이다. 세상살이가 그렇듯 민원을 일으키는 원인은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가 많다. 구청 내 이 부서, 저 부서를 왔다 갔다 해야만 해결책을 구할 수 있다. 행정에서는 이를 복합민원이라고 한다.

약사동 제방유적전시관 진입로 가로등이 고장 나서 여러 달 켜지지 않았다. 가로등 4개 중 3개는 공원녹지과, 1개는 건설과 소관이었다. 불과 1~2m 떨어진 거리였지만 가로등이 꽂힌 위치가 공원 부지냐 하천 변이냐에 따라 담당 부서가 달라지는 행정의 특징 탓이었다.

우정동 한 아파트 마을버스 정류장 상습 악취 민원도 마찬가지다. 냄새는 온열 의자 바로 아래 하수구 맨홀에서 올라왔다. 정류장을 옮기는 대신 맨홀 속 오물을 수시로 제거하자는 대안이 제시되면서 업무는 정류장 담당 부서에서 하수구 관리부서로 넘어갔다.

복산동 북부순환도로의 어지러운 차선과 포트홀을 정리한 일도 비슷한 범주다. 도로는 구청이 관리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도로법상 4차선 이상은 광역지자체의 몫이다. 구청이 직접 나서기 어렵다. 게다가 해당 구역 민원은 대규모 재개발사업을 추진한 조합의 묵은 과제였다. 사고 유발 위험성을 꾸준히 제기했고, 울산시와 경찰청이 조합에 작업 이행을 촉구하여, 최근에서야 도로 사정이 겨우 호전됐다.

민원 해결은 작은 일이라도 품이 많이 든다. 불편한 건 분명한데 예산이 많이 들거나, 현행법상 맞지 않아 딱히 방법이 없을 때는 대안책이라도 찾아야 한다. 실질적인 해결사인 공무원의 조력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도를 못 구해서 이리저리 헤맬 때, 정확한 방향과 합당한 절차를 밟도록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겉으로는 구의원이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 잘하는 공무원이 여러 궁리 끝에 발 빠르게 나서주어 가능했다.

동네 민원 접수 창구를 맡은 지 만 3년이 되어간다. 창구 문턱이 닳아 없어지도록 민원인이 더 많이 찾아주면 좋겠다. 큰일, 작은 일 마다 않고 동네일을 내 일처럼, 초심으로 돌아본 동네 구의원의 새로운 각오다.

홍영진 울산중구의회 의원

※외부원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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