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조온윤 ‘그림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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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조온윤 ‘그림자 숲’
  • 경상일보
  • 승인 202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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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그림자가 우거져 있었다
우는 건 새가 아니라
새의 마음이었다

숲으로 가 숲을 보는 대신
눈을 감고 숲의 고요를 떠올렸다
잠을 자려다 문득
내가 원하는 건 잠이 아니라
잠 속의 산책이 아닐까
행복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숲의 그림자와
그림자의 숲
잠 속에서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새는 안 보이는데
자꾸 새의 그림자만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누군가 날아가는 새떼를 가리키는데도 여전히
발밑에 떨어진 그림자만
보고 있었다
거기서
새의 마음을 찾으려는 것처럼

눈을 뜨지 않아도
눈꺼풀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새를 갖지 않아도 새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감춰진 본질에 대한 관심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장마철이라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있지만 구름 너머 푸른 하늘을 생각해본다. 구름은 그야말로 수시로 바뀌는 하나의 현상이다.

이 시에서도 화자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그림자, 새가 아니라 새의 마음, 숲이 아니라 숲의 고요를 본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면의 것, 본질적인 것, 감춰진 것에 관한 관심을 의미한다.

내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잠 속의 산책처럼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운 걸 원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다. 숲의 그림자와 그림자의 숲은 어떻게 다를까.

그림자의 숲은 ‘잠’처럼 무의식의 세계, 근원적이고 내밀한 세계가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내면의 눈으로 고요히 눈꺼풀 너머 세상을 응시할 수 있겠다. 새를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새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그 새를 사랑할 수 있겠다. 울음소리와 부드러운 깃털과 작은 심장의 박동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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