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라는 소리 들려 이른 아침 도착한 곳
비까지 내리는데 한발 빠른 방문객
놀랍고 반갑기도 해 인사 먼저 건넨다
왼편에 자리 잡은 소나무 한 그루
구십 도로 절을 하니 경건함 갖게 된다
누구나 똑같이 품는 맘 소나무는 알겠지
중구 우정동에 위치한 공원이다. 이번에도 공원 이름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갔는데 어김없이 빗나갔다. 생각했던 바위는 없었다. 우정동 새마을협의회에서 쾌적하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 공원 소개는 빼려고 하다가 산책로로 오르는 길에 기역자로 크게 꺾여 자라는 소나무를 놓칠 수 없어 마음을 바꿨다.
이른 아침에 찾은 공원인데도 다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비까지 한두 방울 떨어지는 상황이었는데 나보다 더 빨리 공원을 찾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타일 바닥을 밟고 들어서면 왼편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나무가 있고 오른편에는 공원표지판과 벤치 두 개가 있다. 가운데에는 사각의 화단이 두 개 있고 각각 두 그루의 나무를 심어놓았다. 사각 화단을 지나면 운동기구와 파고라가 설치돼 있다.
맞은편에 있는 입구로 가면 경사가 좀 심하다. 걷다가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처럼 높낮이가 있어 걸을 때는 신중해야 했다. 바닥 타일의 무늬가 물결처럼 곡선을 이루고 있어 네모반듯한 타일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타일이 움직인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타일 문양의 곡선미는 딱딱함을 무마시키는 데 톡톡히 한몫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볼수록 마음이 더욱 움직이는 그 소나무를 보면서 다시 경건해진다. 그 소나무를 통과하면 야자매트가 깔린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매트 틈 사이로 잡초들이 푸릇푸릇 올라오고 있어 풀의 강인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언덕이 약간 진 곳에 놓여 있는 그 매트는 곧 있으면 존재를 모를 정도로 풀들에 휩싸일 것이다. 풀들이 무성해지면 그 길은 아무도 걸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산책로에 목련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경사진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위태하게 보인다. 지면이 고른 곳에 바로이식이 되면 좋겠지만 그런 손길이 빨리 미칠지는 모르겠다. 이대로 둔다면 기우뚱한 나무는 여름 태풍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길지 않은 산책로를 끝까지 걷고 그 길로 다시 돌아 나온다. 올라갈 때는 어서 오라고 구십 도로 절을 하고 내려갈 때는 또 잘 가라고 구십 도로 절을 한다. 소나무를 다시 본다. 줄기가 저렇게 꺾이고도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불굴의 의지가 아니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이 저렇게 꺾인다면 다시는 회복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지지대도 없이 자기 몸을 다시 추스르고 무성한 잎을 단 것을 보면 소나무의 습성과 끈기는 사람들의 정신을 충분히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운동기구를 앞에 두고 언덕이 있는 부분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좌석이 네 개 층으로 설치돼 있다. 사람들이 저기에 앉아 편히 쉼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사람을 위한 자리라는 생각이 머무니, 거짓말처럼 아늑해진다. 언덕이 있는 공원의 위쪽에는 울산성자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교회는 평지인데 교회와 공원 사이에는 언덕이 있어 공원이 약간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괜찮다. 이 공원을 빛내주는 예의 바른 주인공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과 고난을 모두 이견 낸 저 소나무가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지 않는가. 참 마음을 많이 움직이게 하는 나무이다. 앞으로도 늘 그런 모습이기를..
글·사진=박서정 수필가 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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