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구천의 고래, 무대 위에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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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반구천의 고래, 무대 위에 다시 살아나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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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철 울산문화예술회관 관장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 등재는 울산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과 잠재력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다. 산업과 자연,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이 땅이 지닌 고유의 이야기가 이제는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 새롭게 쓰이게 됐다.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기관으로, 우리는 이 역사적 성과를 시민들과 특히 미래세대에게 어떻게 의미 있게 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은 그 연장선에서 어린이를 위한 창작 인형극 ‘어린왕자와 비밀의 돌’을 기획했다. 오는 9월6~7일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선보일 이 공연은 울산시청 소속 암각화박물관에서 발행한 동화책을 원작으로, 문화예술회관 공연기획팀이 공연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울산시청 내 문화와 유산을 다루는 부서들이 반구천 암각화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만들어낸 협업의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울산의 이야기를 울산의 손으로 풀어낸, 진정한 의미의 지역 창작극이라 할 수 있다. 공연은 훌륭한 왕이 되고 싶은 신라의 삼맥종 왕자가 신석기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호랑이 등 동물 친구들과 함께 반구천의 자연을 여행하며 용기와 지혜를 배워 훌륭한 왕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반구천 암각화에 실제로 새겨진 동물 문양을 모티브로 제작된 막대 인형과 생동감 넘치는 무대 연출, 음악이 더해져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공연은 어린이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 구조와 시각적 요소를 바탕으로, 동시에 지역 유산에 대한 교육적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했다. 어린이들은 세계유산이라는 개념을 무겁지 않게 접하고, 예술의 언어로 지역의 정체성을 경험하게 된다. 울산이라는 공간, 반구천이라는 장소는 단지 지리적 배경이 아닌, 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는 문화예술이야말로 유산을 오늘에 연결하고 내일로 전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울산문화예술회관은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작가 등과 협업해 스토리와 무대미술, 음악적 구성까지 유기적으로 설계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하고, 무대를 통해 지역의 유산과 만날 수 있도록 정서적 흐름과 메시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공연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어린이의 감성 속에 ‘반구천’이라는 이름을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울림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기획은 단지 하나의 어린이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 문화예술이 유산과 교육, 그리고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통합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울산에서, 문화와 예술을 통해 도시의 또 다른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 이러한 시도는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문화는 기억을 남기고, 예술은 그 기억을 감각으로 되살린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이 귀한 유산을 우리는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인가?”. 그 답은 박물관의 유리장 너머 해설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상상력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의 창작인형극 ‘어린왕자와 비밀의 돌’은 바로 그런 시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예술을 통해 살아 움직이며, 어린이들의 감성 속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유산 등재는 한 도시의 문화적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울림을 가지려면, 유산을 감동으로 전하고, 기억으로 남기며, 살아 있는 문화로 이어나가는 노력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예술은 바로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의 창작인형극 ‘어린왕자와 비밀의 돌’을 통해 울산의 아이들이 반구천의 고래와 암각화를 마음속에 품고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울산을, 문화를, 세계유산을 지키는 시민으로 성장하게 될 때, 이 공연은 단지 한 편의 창작극이 아니라, 한 도시의 문화가 다음 세대에게 건넨 귀중한 선물로 기억될 것이다.

마동철 울산문화예술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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